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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경제부총리가 대기업에 투자 요청하는 게 나쁜 일인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만남이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회동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김 부총리는 미래 성장 동력 확충과 상생협력, 지배구조 개선 등을 주문했다. 이 부회장은 일자리 창출을 언급했지만 구체적인 투자 계획은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간 LG·현대자동차·SK 등의 대기업 오너를 만난 뒤 해당 대기업이 투자와 고용의 청사진을 발표한 것과 다르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청와대가 ‘재벌에 투자·고용을 구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우려를 전달하면서 ‘변화’가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

왜 다른 대기업은 괜찮고 삼성에 대해서만 엄격한가라는 물음이 제기될 법하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국내 최대 기업집단으로서 삼성이 갖는 상징성 때문이라고 답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처럼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기업 중에서도 삼성과 나머지 기업을 나누는 등 편 가르기 할 때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한국 경제는 장기간 횡보하던 경기가 결국 하강으로 방향을 튼 형국이다. 소비, 투자, 수출 등 성장 엔진 모두가 힘을 잃어가고 있다.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소득주도성장 후유증으로 고용은 참사라고 부를 수준이며 설비투자는 18년 만에 4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다. 반도체를 제외한 대부분의 주력 산업이 중국의 거센 추격에 시달리는 가운데 무역전쟁 격화로 대외 환경의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졌다.

이런 화급한 상황에서 경제정책을 책임진 김 부총리가 대기업의 투자를 요청하고 재촉하는 것은 당연하다. 짧은 시간에 경기 부양 효과가 큰 지출에는 건설 투자가 있다. 그러나 정부의 부동산 규제 정책으로 이를 늘리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거의 유일한 수단이 기업의 설비 투자 확대다. 게다가 지난달 초 문재인 대통령은 인도 방문 때 이 부회장을 만나 투자와 고용 확대를 요청한 바 있다.

그럼에도 이런 소동이 벌어짐에 따라 혁신성장을 강조하는 정부 정책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질 수 있다. 청와대 경제팀의 반기업정서, 재벌개혁 최우선 기조가 이번 논란으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신호를 주는데 기업들이 혁신과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설 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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