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사회 진입을 막는 정부 규제와 기득권 저항 한국은 특히 강고하다
개인 참여와 공감 끌어내는 공유 플랫폼 만들지 못하면
어떤 정부도 어떤 기업도 성공할 수 없다
1983년 여름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라는 애절한 가요와 함께 온 국민을 울린 것은 KBS의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이었다. 한국전쟁 휴전 후 30년, 흩어진 이산가족은 1000만이 넘었다. 5만3536건의 사연이 방송되고 1만189건의 상봉이 이루어진, 텔레비전을 활용한 세계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 분단의 아픔을 깨우친 그 방대한 영상은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2005년 재즈의 도시 뉴올리언스를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강타했다. 거대한 해일로 물에 잠긴 지역에서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했다. 수십명의 전문가가 나서서 피난민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입력양식(PFIF)을 만들었고, 4000명의 자원봉사자가 입력을 도왔다. 하루 만에 1만5000건, 그리고 일주일 만에 9만건의 기록이 온라인으로 입력됐다. 그 결과 순식간에 이산가족이 재회했다.
생이별한 가족을 찾아준 사회혁신이라는 점에서 두 사례의 ‘본질’은 같았으나 ‘방식’은 매우 달랐다. 전문방송인력을 1641명이나 투입하고 9개 지역국을 동시 연결하여 138일간 무려 453시간의 공중파를 사용한 KBS의 생방송이 아날로그 시대 ‘닫힌 위계’ 모델이었다면, 수많은 자원봉사자의 참여로 불과 며칠 만에 문제를 해결한 카트리나 사례는 초연결 시대 ‘조직 없는 조직화’의 전형이었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인터넷 보급률 96%, 스마트폰 보급률 94%인 한국은 세계 1위 초연결사회다. ‘닫힌 위계’는 매우 빠르게 ‘열린 네트워크’로 대체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 정책이 기술진보를 따라가지 못하는 ‘제도 지체’ 현상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2015년 낙타를 통해 감염된다는 메르스가 국내에 퍼졌다. 국민 불안을 우려한 정부는 감염자가 치료받는 병원을 비밀에 부쳤다. 그러나 공포는 더 커졌다. 결국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메르스 확산지도’를 만든 후에야 가라앉았다. ‘열린 집합 지성’이 ‘닫힌 관료제’의 한계를 극복한 것이다.
미래사회로의 진입을 막는 정부 규제나 기득권의 저항은 한국에서 특히 강고하다. 뉴욕이나 베이징을 포함해 전 세계 대도시 교통은 우버나 리프트 같은 공유교통서비스가 장악했다. 그러나 한국만 예외다. 미래 금융은 빅데이터,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 정보통신기술(ICT)과 결합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산업이 되었다. 중국의 알리페이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해묵은 금산분리, 은산분리 규제가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 에어비앤비가 세계 호텔산업을 뒤흔들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미풍이다.
세계 시가총액 최상위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알파벳, 페이스북, 아마존, 알리바바 등은 모두 플랫폼 기업이다. 불특정 다수를 연결해주는 플랫폼이 가지는 독점적인 지위가 이윤의 토대다. 그러나 블록체인 기술의 확산은 이러한 승자독식 시장도 매우 빠르게 바꾸어 나가고 있다. 모든 참여자의 기여를 인정하고 이익을 배분할 수 있도록 하는 ‘거래비용 제로’ 사회로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다. 거래비용이 낮아지면 투명성과 익명성이 확보된 상태에서 분산된 개인들 간의 계약과 거래가 가능해진다.
로널드 코스(Ronald Coase)에게 1991년 노벨경제학상을 안긴 명제는 ‘불완전한 시장의 실패를 극복하는 대안이 정부나 기업과 같은 위계조직’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투명하고 익명적이며 변조 불가능한 분산원장 시스템을 가능하게 만든 블록체인의 확산으로 인해 위계조직은 개인들 간 스마트 계약으로 대체되고 있다.
개인의 참여를 촉진하고 공감케 하는 공유 플랫폼을 만들지 않고서는 어떤 정부도, 어떤 기업도 성공할 수 없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가능해진 정치판에서는 중앙집권형 권력 구조를 바꾸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시민들은 열린 광장에서 새로운 권력을 만들어냈다. 아이디어만 좋으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서 누구든 사업화할 수 있다. 블록체인 기술은 비영리 조직의 주먹구구식 모금과 분배 활동도 투명하게 바꾸고 있다. 신재생에너지의 교환 시장이 만들어지면 중앙집중형 전력산업에 대한 의존 역시 크게 줄어들 것이다.
이상적인 기업 모델도 달라지고 있다. 모든 것을 내부화·위계화하는 통제형 닫힌 조직을 벗어나 과감하게 외부화·네트워크화하고, 자율과 참여를 촉진하는 공유의 플랫폼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지속할 수 없다. 빠르게 다가오는 초연결사회, 이정표는 오래된 사회적 가치, 즉 ‘공감과 신뢰’다.
이재열(서울대 교수·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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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포럼-이재열] 초연결사회의 사회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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