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점수로 줄세우기 안돼… 학생부와 균형 맞춰라”

개인 장점 살린 수시 전형 찾아주고 그에 맞게 준비해 주는 것으로 유명
“방과후 수업 등 학생부 기록 배제… 컬링팀은 대학 가지 말라는 얘기”
“한 문제 더 맞히기 공부 뛰어넘어 자기주도적 학습능력 향상이 중요”

올해는 90초 걸렸다. 서울 경희대 평화의전당 4300석이 순식간에 매진됐다. 이화여대 사범대학 부속 이화·금란고등학교 박권우 교사의 2019학년도 대입 전국교사연수는 지난달 17일 성황리에 열렸다. 박 교사가 매년 두 차례 여는 교사연수 신청은 늘 시작하자마자 마감된다. 전국 교육청과 교사모임에서 강의 요청이 끊이지 않는다. 교육부의 입시개편안 떠넘기기로 논란이 뜨거웠던 지난 12일 서울 서대문구 이대부고 입시전략실에서 박 교사를 만났다.

-입시업체나 학원도 입시설명회를 많이 하잖아요. 박 선생님이 하는 연수는 다른가요.

“세상에선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그리고 의대 치대 한의대 등 주요 대학만 알면 입시전문가라고 불립니다. 고3 담임교사는 다릅니다. 한 반에서 서울대에 1명만 가도 무지 잘 가는 겁니다. 교사가 서울의 상위권 10개 대학 입시를 공부한다 해도 한 반에 5명 정도만 해당되죠. 그런데 사실 공부 잘하는 애들은 집과 학원, 학교에서 다 관심을 기울이지만 그렇지 않은 더 많은 학생들은 본인조차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이 아이들을 조금만 도우면 입시에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아집니다. 다른 친구들은 아무도 도움 못 받는데 도움을 받으면서 준비를 하니까요. ‘진학지도는 우리 손으로’ 즉 ‘우리 아이들의 대학입시는 우리의 손으로 준비하자’ 그게 제가 매번 교사들에게 외치는 구호입니다.”

박 교사는 학생 개개인의 특징과 장점을 살려주는 수시모집 전형을 찾아주고 그에 맞게 준비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함께 수시 전형을 공부하던 교사들끼리 열었던 연수가 이제는 대한민국 진학지도 교사들이 기다리는 연례행사가 됐다. 박 교사가 만드는 연수 교재의 타이틀은 ‘수박 먹고 대학 간다’이다. 수시 대박으로 대학에 합격한다는 뜻이다.

이런 박 교사에게도 아픈 기억이 있다고 했다. 처음 고3을 맡았던 2000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며칠 앞둔 토요일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담임을 맡은 반의 제자가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뒤통수 조심해라. 너 골목길 갈 때 너 뒤통수를 확∼.’

입시 경험이 없어 우왕좌왕하는 담임이 불만이었는지, 순둥이 총각 선생님이 우습게 보였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이 모욕을 어떻게 갚아줄 수 있을까. 월요일 아침 교실에 들어가 교탁에 섰는데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내면에서 울리는 소리가 있었다.

‘교사가 이러면 안 되잖아.’ 박 교사는 그 소리에 답을 해야 했다. 문자메시지를 보낸 학생은 더 열심히 입시지도를 했다. 학생은 원하던 학과에 갔다.

“저도 청년 때 너무나 힘들게 살았지만 고3 1년은 학생들 인생에 가장 중요한 갈림길이잖아요. 제 말 한마디에 애들 인생이 왔다 갔다 하는데 사회는 불평등할 수 있어도 애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갈림길인 대학 입시만큼은 부모가 부자이든 가난하든 평등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수시 전형을 파고들었어요.”

여러 학교에서 진학지도를 맡은 교사들이 모인 ‘유니드림’에서 자체 교사연수를 시작한 것이 2006년이었다. 박 교사가 처음 강사로 나선 이때 800명이 신청했다. 한 번 참석했던 교사들이 주변에 “꼭 같이 가자”고 권하면서 매년 참석자가 늘었다. 숭실대 한경직기념관을 거쳐 지금은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1년에 두 차례 교사연수를 연다. 처음 32개 대학 입시요강을 분석해 만든 284쪽 자료집은 이제 132개 대학을 망라한 1468쪽의 책이 됐다.

-교사면 한국에서 가장 안정적인 직업이라고 하잖아요. 이렇게 애쓰지 않아도 편하게 살 수 있을 텐데요.

“매년 바뀌는 입시 자료를 모으고 대학마다 확인하고 비교분석하다보면 겨울방학 때도 엉덩이에 땀띠가 납니다. 저도 제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죠. 진학지도의 끝에는 학생이 있어요. 결국 학생을 도와주려고 하는 일이에요. 박권우 저 한사람이 고생하면 대한민국의 입시담당 선생님들이 고생을 덜 하실 수 있잖아요. 대신 교사연수에 오는 선생님들께 그렇게 부탁드려요. 학교로 돌아가시면 학생들을 한 번이라도 더 만나서 꿈을 묻고 형편을 살펴 달라고. 결국 교사도 아이들을 알아야 도울 수 있으니까요.”

-선거철만 되면 입시가 논란이 되잖아요. 이번에도 마찬가지인데.

“지난해까지는 정시를 줄이고 학생부전형으로 많이 뽑아야 재정을 지원하겠다고 하던 정부가 갑자기 수능으로 많이 뽑으라고 합니다. 대학마다 역량이 달라요. 입학사정관이 학생 1000명을 평가할 능력밖에 안 되는데 1200명을 뽑으라고 하는 것도 문제였는데, 하루아침에 철학이 바뀌어서 다시 30년 전처럼 점수만 보고 뽑으라고 하는 셈이에요. 그동안 학생들에게 문제풀이만 시키면 안 된다, 토론이나 발표를 강화해 자기 생각이 있는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야 한다고 외치면서 교육과정도 그렇게 바꿔놨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 입시 때는 수능 점수를 갖고 뽑으라 하면 다시 객관식 문제풀이로 돌아가자는 거잖아요. 세상이 바뀌고 있는데 여전히 수능 점수에 집착하고 있는 거예요.”

-학생부가 너무 복잡해서 단순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지 않습니까. 이번에도 방과후수업이나 자율동아리활동은 학생부에 기록하지 말자는 방안이 나왔는데요.

“평창 동계올림픽에 컬링으로 출전한 학생들이 대학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규교육과정 외 학교 스포츠활동은 클럽명과 활동시간만 기재하고 특기사항은 미기재하도록 하자는데 활동시간만 보고 대학에서 어떻게 선발할 수 있나요. 방과후수업을 듣는 아이들은 학교를 믿고 학원 대신 교사를 따르기로 한 학생들이에요. 방과후수업이나 자율동아리활동까지 다 빼버리면 학생부에서 뭘 보고 뽑으라는 건지. 결국 학생부도 정성평가가 줄어들고 정량평가가 부각될 수밖에 없어요. 내신 점수로 줄 세우라는 얘기인가요.”

-모든 학생을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뽑는 게 바람직할까요.

“물론 과도한 면도 있었습니다. 대학이나 고교가 제대로 역량을 갖추기도 전에 무리하게 학생부종합전형을 늘렸어요. 특히 최상위권 대학들이 앞장섰습니다. 수능 점수로 뽑는 학생도 있어야 하고 학생부로 뽑는 학생도 있어야 하니 균형을 맞추면 좋겠어요. 학생부가 사교육 유발 요소라면서 시민 100명에게 물어본다는데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맡긴다면서 왜 학생부는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는 걸까요.”

-대학입시에서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은 뭘까요.

“입시 전형이 2000여개나 돼 복잡하다고 불평하시죠. 알고 보면 수시모집은 학생부교과, 학생부종합, 논술, 실기 4가지 유형이 있고 정시모집은 수능과 실기 2가지입니다. 이 중에서 학생의 적성과 희망에 맞는 전형 유형을 찾아서 조금이라도 더 일찍 준비하면 합격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죠. 가장 중요한 토대는 학교 수업입니다. 교실 안에서 이뤄지는 수업을 통해 토론 발표 실험 탐구활동에 적극 참여해 교과목에 대한 궁금증을 자기주도적으로 해결해 나가면 면접고사나 논술고사뿐만 아니라 개념 중심의 수능 준비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한 문제라도 더 맞히기 위한 공부를 뛰어넘어 스스로 궁금한 것을 알아보고 해결하려는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을 키우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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