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사실상 정계 은퇴 선언 “무고죄 적용” 주장 이어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방송 폐지 여론도 거세
정봉주(사진) 전 의원이 성추행 장소로 지목된 호텔 방문 사실을 인정하고 미투(#MeToo) 폭로를 보도한 기자에 대한 고소를 취하했다. “모든 공적 활동을 접고 자연인 정봉주로 돌아가겠다”며 사실상 정계은퇴도 선언했다.
정 전 의원이 백기를 들면서 20여일간 진행된 진실 공방은 일단락됐다. 피해자의 최초 폭로 이후 명예훼손 고소, 음모론 제기 등 정 전 의원이 보인 행태는 그간 권력형 성추행 가해자들의 적반하장식 대응을 총망라한 것이어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정 전 의원은 28일 입장문을 내고 “2011년 12월 23일 오후 6시43분쯤 (서울 여의도) 렉싱턴호텔에서 결제한 내역을 찾아냈다”며 “렉싱턴호텔에 방문했다는 증거가 나온 이상 이를 스스로 공개하는 것만이 모든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책임을 지는 길이라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는 페이스북 계정에 “저로 인해 마음 상하신 분들과 믿음을 갖고 지켜보았지만 실망하신 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글도 남겼다. 그러나 피해 당사자에 대한 사과는 하지 않았다.
정 전 의원의 대응은 미투 운동을 억압해 왔던 가해자들의 추태가 집약된 것과 같았다. 처음부터 성추행은 물론 렉싱턴호텔 방문 사실 자체도 없다고 잡아뗐다. 이후 피해자가 정확한 호텔 방문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을 쟁점으로 삼아 진실공방으로 몰아갔다. 성추행 입증의 책임도 전적으로 피해자에게 돌렸다. 피해자의 진술을 흔들리게 해 진실성을 훼손하려는 전형적인 전략이다. 제3자가 당일 오후 1∼2시쯤 정 전 의원이 호텔에 갔다는 증언을 내놓자 이날 자신의 행적을 촬영한 사진 780여장 중 일부를 증거로 제시하며 피해자와 언론사를 거짓말쟁이로 몰아세웠다. “익명 뒤에 숨은 피해자가 누구인지도 모르겠다”며 피해자의 신원 공개도 압박했다.
정 전 의원은 성추행 의혹 기사를 쓴 기자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 등으로 고소하면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피해자가 일부 진술을 번복했다는 점도 부각했다.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 등으로 피해자를 옥죄는 것 역시 성추행 사실을 부인하는 가해자가 전형적으로 보이는 수순이다.
정 전 의원과 주변 인사들은 폭로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몰아붙이는 2차 가해에도 나섰다. 방송인 김어준씨는 지난 11일 “미투를 이용하고 싶은 자들이 분명히 있다”고 했고 정 전 의원도 “정치적 의도를 가득 담고 있고 순수하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카드 결제 내역은 본인이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사안인데도 최초 폭로 이후 20일이 지나 찾아본 것도 의문이다. 장진영 바른미래당 미투 법률지원단장은 성명을 내고 “정 전 의원의 고소 취소는 무고죄를 피해가기 위한 꼼수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정 전 의원의 행적을 담은 사진들을 독점 보도한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폐지 여론도 거세다. 블랙하우스는 정 전 의원에게 유리한 사진만 일부 보도했고 이 사진들에 그의 이전 주장과 명백히 모순되는 부분이 있다는 점은 지적하지 않았다. 정 전 의원은 이를 상황 반전에 이용했다. 비판 여론이 확산되자 SBS는 사과를 표명했다. 제작진은 “사건 전체의 실체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부족해 진실 규명에 혼선을 야기했다. 시청자와 피해자에게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프로그램 폐지는 논의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택현 문수정 기자 alle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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