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VR·혈액·콧물 검사로 치매 예측한다… 2019년 ‘치료제’ 나올 듯

치매 발병 2년 지연시킬 경우
유병률 80% 수준으로 줄일 수 있어

무증상 단계 영상 검사 비용 비싸
10만원대 간단한 혈액검사 개발
콧물 진단 통한 조기 발견 길 열려
가상현실 이용한 임상시험 진행
치료 위한 획기적 신약 개발도 눈앞

정부선 치매R&D 10년 로드맵 추진

2020년 만 60세인 국민은 알츠하이머 치매 발병 위험을 2.5배 이상 높이는 걸로 알려진 APOE4 유전자를 찾아내는 검사를 받는다. 만 65세가 되면 APOE4를 포함해 치매 발병과 관련성 높은 200개의 유전변이(SNP) 발굴 검사를 추가로 받는다. 타고난 치매 위험성을 80% 이상 정확히 알 수 있다. 만 65∼75세는 알츠하이머병의 원인 물질인 베타아밀로이드를 측정하는 혈액검사를 받는다. 피 한 방울로 몇 년 앞서 치매 발병 여부를 맞출 수 있다. 정확도는 85∼90%다.

이들 검사는 증상이 없어도 향후 5∼10년 내 치매에 걸릴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검사비용은 5만∼10만원정도다. 치매 위험이 있다는 결과가 나오면 그때쯤 개발돼 있을 알츠하이머병 치료 신약을 미리 써 발병을 지연시키거나 진행을 늦출 수 있다.

2014년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치매국책연구단을 이끌고 있는 조선대 의생명과학과 이건호 교수가 불과 2년 후면 실현 가능하다고 제시한 ‘전 국민 생애전환기 건강검진체계’를 통한 치매 선제적 대응 시나리오다.

이를 위한 치매 조기 예측 및 고위험군 선별검사 기술은 이미 상당한 진척을 이뤄 일부가 실용화를 눈앞에 뒀다. 기존의 단순 증상완화 치료제가 아닌, 치매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획기적 신약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다만 국민건강검진체계 도입 등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이 따라줘야 최종적으로 실현 가능하다.

10년간 1조원대 치매R&D 로드맵 나온다

정부는 치매 환자의 급증에 발맞춰 치매국가책임제를 보건의료 정책1호로 채택해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상당부분 요양·돌봄 체계의 공공화와 개인 의료비 부담 경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치매 예방 및 극복을 위한 근본 대책이 빠져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 9월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국가치매연구개발위원회를 구성해 원인 규명부터 돌봄까지 아우르는 치매R&D10년종합계획(로드맵) 마련에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정부는 2019년부터 매년 1000억원씩 10년간 총 1조원을 투입하는 로드맵을 최근 완성했으며 내년 상반기 공개할 방침이다.

관건은 다양한 치매 원인 질환 중 70% 이상을 차지하는 알츠하이머병 극복이다. 이는 뇌 속에 독성 물질인 베타아밀로이드가 쌓여 뇌세포가 서서히 죽어가는 병이다. 대개 무증상(베타아밀로이드가 쌓이기 시작하지만 기억력 저하는 나타나지 않음)→경도인지장애(뇌세포 소실이 시작돼 기억력 저하가 나타나지만 독립적인 일상생활 가능)→치매(뇌세포 소실이 상당히 진행돼 기억력·인지 기능이 뚜렷이 저하되고 일상생활이 힘들어짐) 단계로 진행된다.

서울의대 정신과학교실 이동영 교수는 18일 “무증상 단계 알츠하이머병 시작 후 약 15년이 지나야 치매 단계로 진행된다”면서 “뇌세포가 이미 소멸된 상태에선 뇌기능 복구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뇌세포 손상 전(前)이나 경미한 단계(무증상 혹은 경도인지장애)에서 조기 발견해 예방적 치료와 훈련을 제공해야 치매로 가는 걸 효율적으로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건호 교수는 “향후 값싸고 간편한 치매 조기 예측 기술이 상용화되면 10년 정도 치매 발병 자체를 지연시키거나 병의 진행을 늦출 수 있다”고 내다봤다. 치매 발병을 2년 지연시킬 경우 유병률은 80%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

혈액, 콧물 속 치매 유발 물질 탐지

혈액 속에서 베타아밀로이드를 측정해 알츠하이머병 여부를 예측하는 기술이 상용화에 가장 근접해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지난해 초 이런 기술을 개발했다. 바이오기업 피플바이오는 진단 키트를 만들어 실용화를 목전에 두고 있다. 치매예측기술국책연구단 소속 묵인희·이동영 서울의대 교수팀도 최근 뇌에서 빠져나온 베타아밀로이드를 소량의 혈액(1㏄) 속에서 90% 정확도로 측정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교수는 “대부분의 치매 진단 기술은 증상이 뚜렷한 치매 환자를 구분하는 방법인데, 새로 개발한 기술은 증상이 없는 정상단계에서 알츠하이머병을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고 말했다.

지금은 무증상 단계와 알츠하이머병 초기의 경우 정확히 진단하려면 병원에서 ‘아밀로이드PET’(양전자방출단층촬영)를 찍어봐야 한다. 하지만 한 번 촬영에 100만∼150만원이 들고 국내 10여개 대형병원만 이 장비를 보유하고 있어 접근성에 제한이 있다. 향후 3년 내 측정키트가 상용화되면 건강검진에서 10만원이 채 안 되는 간단한 혈액검사만으로 가능해져 불편을 덜 수 있다.

콧물에서 알츠하이머병을 조기에 찾아내는 방법도 개발됐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문제일 교수팀은 알츠하이머병 치매 초기에 땅콩버터, 오렌지 등 5가지 냄새를 맡지 못한다는 사실에 주목해 동물실험을 진행한 결과, 베타아밀로이드가 콧속 후각상피세포에서도 생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독성물질이 뇌뿐 아니라 후각 기능까지 마비시키는 셈이다. 특히 초기 후각 기능의 문제가 뇌 인지 기능에 이상을 보이는 단계보다 훨씬 앞선 시점(6개월 전·알츠하이머병 초기)에 진행됨을 확인했다. 즉 경도인지장애 단계 환자의 콧물 검사를 통한 치매 조기 진단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가상현실(VR)도 특급 도우미로 활용될 전망이다. 한양대 류호경 교수는 현금인출기(ATM) 사용과 버스타기 등 다소 복잡한 일상생활(총 22가지)을 가상현실로 만들어 참가자의 행동패턴과 손·머리 움직임, 반응시간 등을 분석해 경도인지장애 여부를 판단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경도인지장애 환자 30명과 정상인 30명으로 임상시험을 시행한 한양대구리병원 신경과 최호진 교수는 “경도인지장애 판별 정확도가 90%로 높았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전화기 사용, 쇼핑, 화장실 이용, 목욕, 세탁 등 환자의 일상 행동을 가상현실 체험으로 분석하면 기존 검사 시 꼭 필요한 보호자나 검사자 교육이 필요 없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했다.

2019년 알츠하이머병 신약 나올 듯

현재 전 세계에서 판매 중인 알츠하이머병 약 4종은 전부 치매 증상만 개선해 주는 약물이다. 베타아밀로이드나 또 다른 유발 물질인 타우 단백질의 생성을 억제하거나 제거해 알츠하이머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해 주는 약이 아니다. 지금까지 임상시험은 주로 뇌 손상이 이미 진행된 환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대부분 실패했다. 뇌세포가 죽은 상태에선 치료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서야 뇌세포 손상 이전이나 가벼운 경도인지장애 환자들로 대상을 바꿔 글로벌 임상시험이 많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 국내외적으로 30∼40여개의 알츠하이머병 신약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이건호 교수는 “이 가운데 10여종은 시판 허가를 위한 마지막 단계인 임상 3상 시험이 진행 중이다. 이르면 2019년쯤 베타아밀로이드를 80∼90% 제거하는 새로운 치료제가 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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