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시장에 갔다. 20년 전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작은 가게에서 산 가방이 있는데, 어깨끈을 연결하는 쇠고리가 부서졌다. 집에서 멀지 않은 수선집에 가보니 예상보다 수리비가 비쌌다. 남대문시장에 가면 조금 싼 가격에, 잘 해 주는 곳이 있을 것 같았다. 버스를 타고 명동에 내려 시장까지 걸었다. 바람이 차가웠지만 햇볕을 쬐니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남대문시장의 한 상가 3층에는 가방 쇠고리만 판매하는 가게들이 모여 있었다. 내가 찾던 구릿빛의 앤틱한 디자인뿐 아니라 온갖 쇠고리들이 유리 진열장과 서랍장에 꽉꽉 들어 차 있었다. 주인아주머니의 활기찬 목소리를 들으니 어떤 가방을 가져와도 그에 걸맞은 물건을 찾아주실 것 같았다. 별것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20년 넘게 살아온 이곳 서울에,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가 여전히 많구나!’ 하는 걸 새삼 느꼈다.
김난도 교수께서 DJ로 활약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상담 코너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청취자가 의욕이 없어 힘들다는 사연을 보내왔다. 그때 김 교수께서 “나는 지치고 의욕이 없어지면 남대문시장에 가요. 시장에서 활기차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힘이 나요”라고 했던 기억이 났다.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세상은 닫힌 세계였다. 환자와 보호자 한두 명이 들어오면 꽉 차는 창문도 없는 진료실에서 하루 종일 상담을 했다. 닫힌 공간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얻게 되는 간접 경험으로 내 삶을 채워 왔다. 일과가 끝나면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밤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살다보니 한낮의 햇빛을 마음껏 들이킬 수 없었다. 우울증 환자에게 “햇빛 보고 많이 걸으세요. 집 밖에서 움직여야 마음이 건강해져요”라고 습관처럼 조언했지만, 정작 나는 그러지 못할 때가 많았다.
의욕은 새로운 경험을 계속해야 생긴다. 경계를 넘어 낯선 세상을 탐색할 때 진정으로 살아 있다고 느낄 수 있다.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약간 불확실하고, 약간 불편하더라도 새로운 세계에 자신을 던져넣어야 한다. 멀리 갈 것 없다. 여행을 떠나 온 것처럼, 시장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녀 보자. 닫힌 공간을 벗어나, 열린 세상을 향해 지금 당장 몸을 움직여 보자.
김병수(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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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노트]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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