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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 칼럼] 질서 있는 퇴각을 권한다

“혼란 16개월 지속되면 국가 결딴… 개헌 공론화와 남은 임기 최소화로 정상 회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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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신뢰 회복은 거의 불가능하다. 여론도 그렇거니와 지난 이틀 동안 만나봤던 여권 고위 관계자 2명의 전망도 조심스럽지만 마찬가지였다. 이 정권 출범에 깊숙이 기여도 했고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했던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식물 대통령, 식물 정권 상태가 걱정스럽다고 했다. 사실상 국정 공백이다. 대통령 지지율은 수도권에서 한자리까지로 떨어졌다는 조사도 있다.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분노가 광범위하게 퍼져나간다고 봐야 한다. 대통령 임기는 16개월 가까이 남았다. 그 긴 시간 동안 나라꼴이 이런 상태로 지속된다면 불행을 넘어서 경제·안보 측면에서 파국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정치권이나 국가 운영에 책임 있는 사람은 최순실 사태 이후를 냉정히 생각해봐야 한다. 집단 우울증에 빠질 정도로 황폐해지고 공화정 질서가 무참히 깨진 이 나라를 어떻게 다시 추스르느냐 하는가를 말이다.

책임 있는 사람들은 이 정부의 관리 방안에 집중해야 한다. 영어 ‘crisis(위기)’의 어원은 라틴어 크리시스로 ‘판단하고 결정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니 위기는 리더십이 판단해서 결정해야 할 상황이란 뜻이다. 지금 대통령 주변에는 국정을 상의할 사람이나 그룹이 없어 보인다. 판단과 결정이 제대로 될 리 없다. 그게 국정공백이다. 이 기간을 최소화시켜야 하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이유다.

거국중립내각이나 책임총리 같은 것은 겉으로는 그럴듯하다. 정의롭고 공평해 보인다. 그게 16개월 동안 제대로 굴러갈까. 지금의 여야 공방에서 보듯 대선주자 등의 주판알 튕기는 속내가 다르기 때문에 합의도 어렵거니와 구성이 돼도 배가 산으로 가다 절벽으로 떨어질 것이다. 방향성을 상실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야 5대 5로 내각을 구성하고, 총리를 추천했다고 치자. 내각에서 복지 정책을 결정해야 하는데 합의가 되겠는가. 법인세 인상이나 보육비 지원은 어떻게 할 건가. 정쟁만 격화된다.

여야는 대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나라를 구한다는 심정으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그것은 개헌 논의 시작이다. 권력구조뿐 아니라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 불일치를 포함해 기본권 등 87년 체제가 갖는, 그리고 최순실 사태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근본적 적폐를 청산하는 과정으로 개헌 논의를 하자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키고 정상으로 복귀시키는 치열한 공론의 장으로 만들자. 공론이 시작되면 박 대통령은 질서 있는 퇴각을 준비하겠다는 선언을 해야 한다. 이후 개헌이 되면 자진해서 그 자리에서 내려온다. 그리고 대통령 중임제든, 내각제든 개헌 내용대로 헌법적 절차에 따라 차기 정부를 맡을 권력을 선출한다. 그렇게 해서 혼란을 최대한 단축시켜야 한다. 일부 야권이나 시민사회가 주장하는 무책임한 즉각 하야 요구가 아니다. 냉혹하리만치 감정을 배제하고 질서 있게 헌법적 절차를 진행시키면 된다.

일각에서 야권에 유리하다고 주장할 수 있겠다. 그러나 대선주자 들이 개헌 내용과 국가운영 방안 등을 제시하고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으면 된다. 그 공평한 출발선을 만드는 내각의 구성 등 최소한 역할만 이 정부가 하면 된다. 대통령이 탈당해주면 여당도 고리가 끊어져 좀 더 자유스럽게 다음 공화국을 준비하는 토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유권자들은 대선주자들의 자질을 평가할 수 있다. 지금 벌어지는 일부 대선 주자들의 국정 흔들기나 우유부단함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개헌 논의로 국정농단 수사가 흐지부지되지 말아야 할 것은 물론이다. 대통령이 내려올 때까지 국정운영의 두 축은 개헌 공론화와 국정농단 수사여야 한다. 질서 있는 퇴각, 대통령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애국이다.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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