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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돈 안 되는 연구하라’는 카이스트의 파격 실험

일본이 지난해까지 기초과학 분야에서 받은 노벨상은 21개에 이른다. 중국도 지난해 처음으로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1960년대부터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종자)’ 전략을 채택한 한국은 이제 ‘퍼스트 무버(선도자)’ 전략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밑천이 달리는 실정이다. 그 밑천이 각종 산업기술과 응용과학의 바탕이 되는 기초과학이다. 한국 과학기술 정체론이 나오는 시점에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이 시작한 실험은 주목할 만하다. 이 대학은 상업화와 상관없이 글로벌 난제나 인류 지식에 가장 근본적인 질문 해결에 최장 30년간 연구비를 지원하는 ‘그랜드챌린지 30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23일 발표했다.

한국에서 특정 연구에 이처럼 장기적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예가 우선 드물다. 더욱 신선한 충격을 주는 것은 연구 주제다. 카이스트는 19일부터 학부생과 교수들을 상대로 프로젝트 공모를 시작했는데, 연구과제는 ‘현재 핫이슈가 아니어야 하며, 10년 안에 상업화하기 어려운 주제여야 한다’고 못 박았다고 한다. 한마디로 돈이 안 되는 주제라도 좋으니 ‘큰 의문’에 과감히 도전하라는 얘기다.

지난해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이 19조원에 이르지만 대부분 단기·경제성과 중심이었다. 이에 따라 ‘선도자’ 국가발전 전략과 성장동력 확충이 시대적 요구인 현실과 엇박자가 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기초과학 분야에서도 5년 이내 단기 목표에 연연하거나 주제 선정이 유행을 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정부가 4차 산업혁명을 앞두고 미래성장동력 지원에 나섰지만 알파고가 뜨자 인공지능, 포켓몬고 유행 직후 가상현실을 집어넣었다는 냉소가 나오는 이유다.

이번 카이스트의 움직임은 한국 과학기술계의 병폐인 ‘성과 지상주의’가 시정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기초과학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가 지금처럼 단기 성과에만 매몰되면 미국·일본 등을 추격하기는커녕 천문학적인 예산과 인력 투입으로 따라오는 중국에도 설자리를 뺏길 공산이 크다. 다른 대학·연구기관, 민간 재단에서도 카이스트의 예를 좇아 과학계의 큰 문제 해결에 장기적으로 자금을 지원하고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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