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기왕성하던 무렵에는 별것 아닌 걸로 툭하면 일본인들과 아옹다옹했다. “한국인은 어떻게 개고기를 먹느냐?”고 치고 나오면 “한국에서는 개나 먹는 말고기를 일본인은 어찌 그리 즐기느냐?”고 타박한다. 또 “한국에는 성탄절도, 불탄일도 다 노니 좋겠다”고 은근히 비틀면 “일본에서는 살아 있는 사람의 생일도 국경일이더라”고 메친다. 살아 있는 사람의 생일? 그렇다. 그쪽 경축일에는 일왕 생일이 반드시 낀다. 현재의 아키히토 일왕이 태어난 12월 23일도 캘린더의 날짜가 빨간색이다. 심지어는 죽은 이까지 챙긴다. ‘쇼와의 날’이라는 4월 29일은 직전 일왕(히로히토), ‘문화의 날’인 11월 3일은 그 할아버지(메이지)의 생일이었다. 자, 그런데 이제 어쩌나?
아키히토 일왕이 엊그제 비디오 메시지라는 이례적인 방법으로 양위의 뜻을 밝혔다. 사전 녹화한 11분짜리 메시지에서 그는 “국민의 이해를 얻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라는 사뭇 인간적인(?) 당부를 끝으로 스스로의 결의를 다졌다. 그러니 일본 왕실의 200년 구습(舊習)을 떨치며 ‘생전 퇴위’의 새바람을 불어넣으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나루히토(德仁) 왕세자가 뒤를 잇게 될 때, 관례상 그의 생일(2월 23일)이 새롭게 공휴일로 지정되는 것이다.
아키히토 일왕은 1933년에 태어났다. 4명의 공주에 이어 첫 왕자를 보게 되자 일본인들의 기쁨은 대단했다고 한다. 저명 시인 기타하라 하쿠슈(北原白秋)가 작사한 노래 ‘황태자님이 태어나셨네’가 덩달아 동네방네 울려 퍼진 모양이었다. 그렇게 서민의 사랑을 받아온 아키히토 일왕이 이제 여든을 넘긴 나이와 건강 문제 등을 이유로 작심하고 퇴줏그릇을 자청하고 나선 셈이었다.
호사가들은 곧잘 영국과 일본을 대비한다. 둘 다 섬나라요, 내각책임제이면서 왕실이 건재한 것마저 닮았다. 한쪽은 기사도요, 다른 한쪽은 무사도로 나라의 틀을 다진 것 역시 흡사하단다. 자동차가 좌측통행하는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사례를 공통점으로 들먹이는 이도 있다. 왕실의 경우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1953년 6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대관식을 갖고 왕위에 올랐다. 1989년 정월에 즉위한 아키히토 일왕보다 갑절 넘게 재위하고 있을뿐더러 나이도 아흔 턱을 넘겼다. 그럼에도 영국에서는 양위의 ‘양’자조차 귀동냥하기 어려우니 이것만큼은 일본과 견주어 말뜻 그대로 ‘사이비(似而非)’, 닮았으되 닮지 않았다고 할까.
두 사람에게는 인연이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대관식에 당시의 아키히토 왕세자가 축하 사절로 참석했던 것이다. 그가 도쿄에서 요코하마 항구로 향하는 길에는 구경꾼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미국 선박 프레지던트 윌슨호의 갑판에 선 모습까지 방송을 타면서 TV시대를 재촉하게 되었다. 양위 뉴스를 접하면서 “불가능한 일은 입에 담지 말고, 가능한 일만 이야기하라”는 그의 소신이 떠올랐다. 한·일 월드컵축구 공동개최를 앞둔 시점의 기자회견 자리에서 불쑥 던져 일본 우익들을 혼비백산시킨 이런 말 또한 소신에서 우러난 진심의 토로였으리라.
“나 자신으로서는 간무 일왕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적혀 있다는 사실에 한국과의 인연을 느낍니다.”
언젠가는 왕실을 담당하는 궁내청 출입기자들을 만나 “일왕이라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이 고독으로 여겨지기도 한다”면서 마음 한 자락을 슬쩍 내비치던 일본의 상징. 입 밖에 내진 않아도 은근히 바랐다는 한국 방문을 못 이룬 게 무척 아쉽겠다.
그런데 참, 양위가 이뤄지면 일본인들은 쉬는 날이 또 하루 늘어나 좋아하려나?
조양욱(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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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풍향계-조양욱] 구습 떨치려는 일본의 ‘상징’
“양위하겠다고 밝힌 아키히토 일왕… 한국 방문 이루지 못한 점 아쉬워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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