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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동성애는 사랑이 아닙니다. 혼자 늙고 결국엔 비참해집니다”

죽음 앞둔 국내 첫 트랜스젠더… 김유복씨의 증언

[단독] “동성애는 사랑이 아닙니다. 혼자 늙고 결국엔 비참해집니다” 기사의 사진
40여년간 동성애자로 살다 동성애를 극복한 김유복씨가 지난 6일 새벽 순천향대 서울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사경을 헤매고 있다. 김씨는 2004년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은 뒤 동성애를 극복하고 동성애의 폐해를 생생하게 증언해 왔다. 이요나 목사 제공
“동성애자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불행의 씨앗입니다.”

탈(脫)동성애의 ‘산증인’ 김유복(75)씨가 순천향대 서울병원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다. 김씨는 2004년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은 뒤 누워 지내다 패혈증이 겹치면서 건강이 악화돼 지난 6일 새벽 입원했다.

김씨는 국내 초기 트랜스젠더다. 트랜스젠더라는 말이 쓰이지 않던 1960년대에도 여장남자나 남장여자는 있었다. 하지만 이태원에 동성애자들을 위한 게이클럽이 생긴 뒤 김씨는 커밍아웃을 하고 활동한 국내 최초의 트랜스젠더로 알려져 있다. 성전환 수술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는 “어려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 사랑의 의미도 알지 못한 채 욕정에 끌려 하루하루를 살았다”고 고백했다.

김씨는 1960년부터 2004년까지 ‘김마리네’라는 이름으로 게이클럽을 전전하며 노래를 불렀다. 그에게 노래는 인생이었고 삶의 전부였다. 화려한 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2004년 척추측만증으로 수술을 받았다. 김씨는 “디스크 수술을 한 뒤 일본에 있는 후배를 따라 일본의 밤업소에서 일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수술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수술을 받은 김씨는 다시는 걸을 수 없게 됐다. 불구가 되자 찾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김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정부에서 나오는 생활비로 한 평 남짓 쪽방에서 지옥 같은 생활을 이어갔다. 봉사자들이 대소변을 받아내며 그를 돌봤다.

외로운 김씨 옆에는 이요나(66·홀리라이프 대표) 목사가 있었다. 이 목사도 40세가 넘도록 이태원에서 게이클럽을 운영하며 동성애자로 살았다. 김씨는 이 목사가 운영하던 게이클럽에서 가수로 활동했다.

이 목사의 어머니는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목숨을 끊었다. 이 목사는 어머니 죽음을 계기로 동성애를 벗어나려 애썼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신학 공부를 하며 동성애를 극복하고 돌아왔다.

김씨와 이 목사는 2015년 홀리라이프(탈동성애인권포럼)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나는 더 이상 게이가 아니다’에 같이 출연했다. 동성애자들과 그 가족의 아픔과 삶의 고통을 알리고 ‘동성애는 치유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1시간8분 분량의 이 다큐멘터리는 유튜브에 올린 지 9일 만에 조회수가 9만5000여건을 넘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김씨는 처참한 말로를 직접 증언했다. 그는 “동성애자들을 보면 정말 애처롭다”면서 “육체적인 즐거움을 잠깐 느낄 수 있겠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동성애의 말로는 비참하다. 결혼도 못하고 늙고 추해진다. 주변 친구들도 에이즈와 자살로 죽음을 맞았다. 동성애의 끝은 아무도 없는 외로움뿐이다. 그것이 실수였다는 것을 그 당시에는 몰랐다”고 고백했다.

순천향대 중환자실 간호사들은 9일 “(김씨는) 의식이 없다가도 이 목사가 병원에 올 때면 눈을 깜빡인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그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제 길고 고달픈 인생을 정리하려는 순간이다. 동성애는 핍박의 대상이 아니라 치유의 대상”이라며 “트랜스젠더 친구들을 불러 임종예배를 드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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