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선진국의 손해보험] 獨, 보험남용죄로 ‘단죄’… 미수범도 처벌

지난 13일 독일보험협회(GDV) 베를린 본사를 찾아갔다. 독일은 한국보다 먼저 보험사기를 처벌하는 보험남용죄를 지정한 나라다.

독일에서도 보험사기 규모는 결코 작지 않다. GDV는 전체 손해보험에서 발생하는 연간 손실의 10% 정도가 보험사기로 인한 것으로 추정했다. 금액은 40억 유로(5조3300억원)에 달한다. 상당수 독일 국민이 소소한 규모의 보험사기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이 같은 결과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독일 시장조사업체 GfK의 조사 결과 응답자의 3분의 1 정도가 보험사기의 불법성에 대한 인식이 희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전·현직 특전사 대원 수백명이 조직적인 보험사기에 가담했다가 적발되는 등 한국 사회에서도 보험사기는 날로 규모가 커져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독일에서도 보험금 청구를 남용하는 경향이 컸지만, 한국과는 양상이 다르다. GDV 보험사기 전담팀장인 페터 홀름스톨은 “한국처럼 보험금을 타내려고 가족을 살해한다든가 고가의 차량 수리비를 노리고 고의 사고를 내는 식의 보험사기는 극히 드물다”며 “돈이 궁해진 실험실 연구원이 보험금을 받으려고 자해를 한 경우가 그나마 독일에서는 극단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자동차보험과 장기손해보험 관련 사기가 많은 반면 독일은 가재도구 보험과 개인 책임보험 관련 사기가 많다. 독일은 공적인 건강보험이 잘돼 있어 민영건강보험의 비중이 크지 않다. 또 안경이나 스마트폰을 보장하는 식의 소소한 보험이 발달한 것도 한국과 다른 점이다.

독일은 형법상 사기죄 외에 보험남용죄를 따로 두고 있는데, 그동안 일반 사기죄와 보험사기죄를 구분하지 않았던 한국이 지난 3월 ‘보험사기 특별법’을 제정할 때도 모범 사례로 거론됐다. 다만 독일의 보험남용 범죄가 우리의 보험 관련 사기와 다르듯 법규의 내용과 집행에도 차이가 크다. 한국은 보험사기죄에 대한 처벌을 일반 사기죄보다 무겁게 한 반면, 독일은 보험남용죄 처벌 수위가 사기죄보다 낮다. 사기죄는 5년 이하의 자유형(징역 등) 또는 벌금형에, 보험남용죄는 3년 이하 자유형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

독일 형법은 보험남용죄 미수범도 처벌한다고 규정해 놨다. 너무 강력해서 문제의 소지가 있어 보이는 조항이다. 하지만 GDV 관계자는 “그런 조항은 있지만 실제 처벌로 이어진 사례가 거의 없어서 시민단체 등에서 문제 삼은 적은 없다”고 밝혔다.

현재 460개 보험사가 회원으로 가입돼 있는 GDV는 표준약관 작성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다. 그중에서도 보험사기 방지는 핵심 업무다. 개별 보험사가 조직적인 범죄에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에 협회 차원에서 공동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과의 공조도 필수다. 홀름스톨 팀장은 “보험 가입자가 경찰에 모든 것을 말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보험사에는 보험금을 받기 위해 더 많은 정보를 주기 때문에 경찰이 오히려 보험사에 정보를 요구하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고 말했다.

베를린=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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