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어버이날’에 40대 남매가 친아버지를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도 충격적이지만 그들의 태도가 더 충격적이다. 얼굴을 공개해도 좋다고 당당히 카메라 앞에 서면서 왜 죽였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묵비권을 행사하겠다”고 말하는 그들의 태도는 한마디로 어이가 없었다. 물론 그들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국민은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아버지를….”
‘청년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른 채 중년이 되고, 중년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른 채 노년을 맞이하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는 말이 있다. 어쩌면 우리 인생은 모르고 사는 인생이 아닌가 싶다. 아버지도 마찬가지 아닌가. 우리가 나이 들어 아버지가 되고 할아버지가 된다 한들 어찌 내 아버지의 마음을 다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하나님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셨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부모 공경은 당연한 것도, 쉬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부모답지 못한 부모, 자녀답지 않은 자녀’가 어렵지 않게 발견되는 이 시대에 어찌 공경하고 공경 받는 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이제는 강단에서 부모와 자녀의 사랑으로 하나님을 설명할 수 없게 됐다. 한마디로 하나님이 아버지 같다고 하면 오히려 시험 드는 성도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 따라서 부모 공경은 지금이 어떤 시대인지와는 상관없이 지켜야만 하는 하나님의 명령인 것이다. 부모 공경은 이 땅에서의 효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모를 공경함으로써 ‘하나님을 어떻게 경외해야 하는지’를 알아가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인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아버지가 하나님 같아서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어떤 모습이든지간에 하나님을 경외하듯 공경해야 하는 것이다.
재밌고도 씁쓸한 만화를 본 적이 있다. 피곤한 몸을 겨우 가누며 퇴근하는 아빠에게 아내와 자녀들이 애교 섞인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준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기대하는 다음 장면은 무엇인가. 만화의 다음 컷은 이렇게 이어진다. “이게 다 너희 때문이야!”
이 시대의 아버지는 참 외로운 존재다. 맞벌이로 인해 경제적인 권위도, 바쁜 회사일로 인해 가정과 교회에서의 권위도 거의 상실해버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정의 대표로 아버지를 세우셨다. 가정은 아버지의 권위로 세워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버지의 외로움 속에 감춰진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 아버지의 외로움 때문에 그래도 우리의 가정이 이 정도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순종’이란 말은 ‘귀를 기울이다’란 뜻이다. 이해되지 않는 아버지를 억지로 이해하고 다 받아들이라는 것이 아니다.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을지언정 귀를 열고 가슴으로 이해해보자는 것이다. 그럴 때에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회복되고 아버지의 권위가 세워지며 가정이 회복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이해하게 되는 축복도 허락해 주실 것이다.
모든 자녀들이여.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방법으로 아버지를 공경하자. 혹 아버지가 예수님을 믿지 않을지라도, 아버지가 능력이 없다 할지라도, 아버지의 성품이 연약하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하자. 이해시키려고 하기 보다는 이해하고, 설득하기 위해 입을 열기보다는 설득 당하기 위해 귀를 여는 지혜로운 자녀들이 되자. 우리의 아버지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보여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형상이요 축복의 통로이기 때문이다.
이건영 목사 (인천제2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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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의 소리-이건영]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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