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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최현수] 트럼프와 군사전략

한국 안보무임승차론이 선거용이라지만 군당국은 최악의 상황 상정해 대책 짜야

[내일을 열며-최현수] 트럼프와 군사전략 기사의 사진
“대통령 후보 때 입장과 대통령의 입장은 다르다. 트럼프의 경우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사실상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국방 당국자들의 우려는 크지 않은 것 같다. 트럼프는 한국에 대해 “남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고 있다”며 안보 무임승차를 비판하고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100% 부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의 위협이 현실화될 것으로 보는 당국자들은 많지 않다.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가 그리 낮지 않다고 판단해서다.

비슷한 경험이 있기도 하다. 30여년 전 한국정부는 미국 민주당 후보 지미 카터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긴장했다. 카터는 후보로 지명되기 전인 1975년부터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공언했다. 그의 발언은 주목받지 못했다. 트럼프가 대선 후보로 나서겠다고 했을 때처럼 카터가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크지 않아서였다.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론은 ‘후보로서 관심을 끌기 위한 과잉공약’이거나 ‘한국 인권 상황 개선과 한·미 현안 해결을 강요하기 위한 지렛대’로 평가됐다. 지금의 트럼프 발언처럼 말이다. 그런데 카터는 당선되자 거세게 주한미군 철수를 밀어붙였다. 그는 취임 전인 1월 9일 미군 수뇌부를 만나 주한미군 철수 계획을 협의했다. 1월 29일에는 ‘대통령 검토각서 13호’를 각 군에 보내 철군 검토를 지시했다. 군의 입장이 나오기도 전인 3월 9일 철군 발표를 했다.

한국정부는 아연실색했다. 미국 내 반발도 컸다. 주한 미8군 참모장 존 싱글러브 소장은 공개적으로 “(카터의) 철군 계획대로 주한미군을 철수시킨다면 반드시 전쟁이 일어난다”며 반발했다. 카터 대통령의 분노를 산 싱글러브 소장은 곧바로 보직 이동을 해야 했다. 주한미군 철수 계획은 관철되지 못했다. 카터 대통령은 78년 1월 주한미군 철수 계획을 재고한다고 발표해야 했다.

국방 당국자들은 트럼프도 카터 전 대통령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본다. 선거를 앞둔 후보 시절에는 표를 얻기 위해 어떤 짓이라도 마다하지 않는 게 정치인의 생리다. 트럼프는 그런 생리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가 대통령이 돼 군사력을 기반으로 전 세계 안보를 고민해야 하는 처지가 되면 이런 미숙한 상황 인식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 섞인 기대가 있는 것 같다.

희망은 종종 실망을 낳는다. 비합리적인 트럼프의 발언에 환호하는 미국인에게서 ‘세계의 경찰’을 자임하며 유지비용을 지불해 왔던 미국의 피로감이 느껴진다. 이 피로감이 정책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그래서 국방 당국자들의 안이한 인식이 걱정된다. 9일 폐막된 제7차 노동당 대회에서 북한은 핵보유국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 속도도 빠르다. 지난주 열린 한 세미나에서 국제문제 전문가는 “북한은 이미 한국을 상대로 한 핵 공격의 실전배치를 완료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의 핵탄두 소형화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한국을 겨냥한 스커드 미사일 계열에 장착할 만큼은 된다는 해석이다.

‘절대무기’인 핵에 대응할 수 있는 효과적 방안은 ‘핵무기’다. 한국은 현실적으로 보유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군이 심혈을 기울여 협의하고 있는 것이 미국의 핵우산을 포함한 ‘확장억제정책’이다. 북한 핵위협 대응책 상당 부분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당국자들은 ‘확장억제’에 대한 미국의 의지는 확고하다고 강조한다. 비핵보유 동맹국에 적용되는 이 정책이 한반도에서 실패하거나 약화되면 다른 동맹국에도 충격을 줄 수 있어서다. 하지만 미국의 동맹에 대한 의식이 달라진다면 이 역시 변화될 가능성이 있다. 군사전략은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 수립된다. 대통령 당선 가능성에 바짝 다가선 트럼프의 공약에 대비해 군이 어떤 군사전략을 수립 중인지 궁금하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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