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바지 주머니엔 세탁소 동전 하나가 있었다… ‘인생 역전샷’ 제임스 한

2008년 캐나다 앨버타 에드먼턴에서 열린 캐나다프로골프 투어 토너먼트 대회에 낮선 동양인이 필사적으로 샷을 휘두르고 있었다. 스코어보드에는 제임스 한이라고 쓰여 있었다. 서른 살이 다 된 그의 머리는 복잡했다. 단돈 200달러가 전 재산이었기 때문이다. 대회가 끝난 뒤 캐디에게 지불해야할 임금도, 집으로 돌아갈 돈조차 없었다. 대회 기간 동안 낮에는 경기를 치르고 밤엔 모텔 방안에서 노트북 컴퓨터로 구직사이트 일자리를 찾았다.

한국이름 한재웅(35). 다행히 그는 톱10에 들어 3000달러를 벌었다. 제임스 한은 그때 일을 회상하며 “그 돈은 내게 백만 달러보다도 큰 돈이었다. 그 덕분에 골프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8일(현지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 퀘일할로우 골프클럽(파72·전장 7575야드)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웰스파고 챔피언십(총상금 730만 달러)에서 연장전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131만4000달러의 상금. 지난해 2월 노던트러스트 오픈에서 생애 첫 PGA투어 우승을 차지한 지 15개월 만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두 살 때 부모를 따라 캘리포니아주 알라메다로 이민을 갔다. 아버지가 생계를 위해 차린 실내골프연습장에서 골프채를 잡았지만 정식 레슨을 받진 못했다. 고교 성적으로 입학한 캘리포니아 주립 버클리대(UC 버클리)에서 광고학과 미국학을 전공하며 골프부 선수로 활동했다.

그러나 제임스 한은 동일한 룰을 강요하는 골프부를 뛰쳐 나왔다. 골프가 싫어서가 아니었지만, 그는 그저 평범한 샐러리맨이 되기로 했다. 2003년 대학 졸업후 광고회사에 취직한 제임스 한은 그때 가슴 속에 떨쳐버릴 수 없는 꿈이 있다는 걸 알았다. 바로 직업 골프선수의 길이었다.

광고회사를 뛰쳐나와 본격적인 연습을 시작했다. 레슨은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호주의 골프 전설 그렉 노먼 스윙 폼 따라하기였다. 평일엔 백화점 구두매장 직원으로 돈을 벌고, 주말엔 2,3부 투어에 나갔다. 자신이 판 구두가 만 켤레 이상은 된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시절이다.

22살에 시작한 프로골퍼의 길은 험했다. 우승도 없었고, 생계비조차 벌지 못했다. 2007년 한국프로골프(KPGA)투어로, 이듬해엔 캐나다투어까지 나섰다. 2009년에야 PGA의 2부리그격인 웹닷컴투어에 정착했고, 2012년 렉스호스피틀 오픈에서 첫 우승을 거둬 PGA투어 출전권을 따냈다.

그제야 구둣가게 점원 생활을 접을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골프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됐다. 가난해도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스스로의 인생을 개척했다. 고난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2015년 노던트러스트 오픈에서 우승했다. 세계 최상위권이던 더스틴 존슨(32·미국), 폴 케이시(39·영국)와의 연장전 끝에 얻은 오아시스와도 같은 우승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날 들어올린 웰스파고 챔피언십 우승컵까지 세 번의 우승이 모두 연장전 끝에 얻은 것이다. 어쩌면 제임스 한의 인생 자체를 닮은 승리였다.

30대 중반의 늦깎이 골퍼, 가난하고 지친 일상 속에서도 꿈을 놓지 않았던 골퍼, 그런 가운데도 항상 웃을 줄 아는 골퍼…. 그게 제임스 한이다.

그런 그가 이날 연장전 마지막 파퍼트를 홀컵에 떨어뜨린 뒤 우승 인터뷰에선 울먹거렸다. 그리곤 손으로 눈물을 닦은 채 TV카메라를 향해 “어머니 아버지, 감사합니다. 곧 찾아뵐게요”라고 했다. 아내인 이탈리아계 미국인 스테파니와 만 한 살을 채 넘긴 딸을 안은 채였다.

제임스 한은 작년 이맘때 첫 우승을 차지한 뒤 인터뷰에서 “지금 소감이 어때요”라고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맨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고, 두 번째로는 저를 위해 최선을 다하신 부모님께 감사한다”고 했었다.

그의 바지 주머니엔 항상 세탁소 동전 하나가 들어있다. 바로 부모님의 밥벌이인 샌프란시스코 한 주택가의 코인세탁소에서 쓰는 것이다. 수십번, 수백번 퍼트 마크를 할 때마다 이 동전을 꺼내면서, 제임스 한은 이민 1세대 부모를 기억했을 것이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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