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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남호철] 벽화마을의 명암

官 주도로 조성된 곳에서 부작용 더 심해… 마을 특성과 동떨어진 전시행정 그만둬야

[내일을 열며-남호철] 벽화마을의 명암 기사의 사진
벽화마을로 유명한 서울 이화동에서 최근 잇따라 벽화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물고기 계단’(잉어 계단)으로 불리는 벽화는 흰 페인트로 싹 지워졌고 꽃계단 벽화도 훼손됐다. 벽화마을로 유명세를 타면서 관광객이 몰려드는 데 불만을 품은 주민이 몰래 지운 것으로 추정됐다. 주민과 종로구, 그림을 그린 당사자는 벽화를 훼손한 혐의를 받고 있는 주민에 대해 고소장을 제출하는 등 갈등이 표면화됐다.

이화동 곳곳에 그려진 벽화는 생활환경 개선을 위해 2006년부터 진행된 서울시의 ‘낙산공공미술 프로젝트’에 따른 것이다. 좁은 골목을 따라 그려진 벽화와 계단 위 그림은 국내 관광객뿐 아니라 일본 중국 등에서 찾아온 외국인 관광객의 주요 관광 코스로 자리 잡았다. 입소문을 듣고 관광객들이 대거 찾아오면서 주민들은 불편에 시달렸다. 사생활이 노출되는 건 예사고, 관광객이 불쑥 대문을 열고 들여다봐 놀라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생활에 불편이 이어지자 관광객들에게 자숙을 요청하는 ‘정숙 관광 캠페인’도 펼쳐졌다. 벽화마을 곳곳에서 ‘조용히 해달라’는 푯말이 에티켓을 호소하고 있다.

벽화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벽화 주변 상권 조성에 따라 지가 상승 등 경제적 이득을 많이 본 주민과 그렇지 않은 주민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쇠퇴한 도심에 활력을 불어넣는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마을의 내력이나 사연을 도외시한 채 인공적 눈요깃거리만 조성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지 않고 단기 실적주의에 빠져 관(官) 주도로 벽화마을이 조성된 곳에서 앙금은 더 심하다.

심지어 ‘한국의 몽마르트르’로 불리며 성공적인 벽화마을로 꼽히는 경남 통영의 동피랑마을도 관광객이 몰리면서 쓰레기 무단 투기와 소음, 주민 사생활 침해 논란을 끊임없이 겪고 있다. 형형색색 지붕으로 ‘한국의 마추픽추’로 일컬어지는 부산 감천문화마을 역시 사회적 기업 운영을 통한 관광 수익 창출로 도시 재생의 모범 사례로 꼽히지만 비슷한 불만이 터져 나온다.

벽화마을이 전국 방방곡곡에 유행처럼 번지면서 인터넷에서 ‘벽화마을’을 검색하면 서울·부산·대구·전주 등 셀 수 없이 많은 지역이 등장한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기업체와 문화예술단체, 봉사단체 등이 ‘경쟁적으로’ 나서서 마을을 형형색색 물들인 탓이다. 그런데도 한편에서는 여전히 벽화거리와 예술마을 조성이 한창이다.

삭막함을 메우고 범죄나 폭력을 예방하는 등 벽화의 순기능이 발휘되는 마을도 있다. 하지만 몇몇 사례를 제외한 대다수가 단순히 미관을 중시하는 전시행정의 하나로 보인다. ‘일단 조성하고 보자’는 식의 근시안적 발상으로 조성된 벽화마을이 심각한 문제로 부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그림이 지워지거나 색이 바래고, 벽면 자체가 손상된 사례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일부 조형물은 환경미화는커녕 ‘흉물’로 전락해 시각 공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관 주도 문화사업의 한계와 고질적 전시행정, 대중적 무관심과 문화적 소양이 한데 얽혀 만들어낸 결과다.

벽화마을은 도시를 화려하게 보이도록 하는 ‘화장’일수도, 큰돈 들이지 않고 보기에 좋지 않은 것을 감추기 위한 ‘위장’일 수도 있다. 화장도 지나치면 아니함만 못하고, 위장이라면 사회악이나 다름없다. 마을의 특성과 동떨어진, 겉만 번지르르한 벽화마을 조성은 그만두는 게 낫다.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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