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생계 밀접한 사건’ 한달 안에 재판 끝낸다… 서울중앙지법 ‘생활 분쟁 집중처리부’ 신설

서울 서초구의 다세대주택 1, 2층에 사는 A씨와 B씨는 누수(漏水) 문제로 골머리를 앓다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소송 상대방은 3층에 사는 이웃 C씨였다. C씨는 “누수는 공동배관 등에 생긴 하자 때문”이라며 방수공사를 해 달라는 A·B씨의 요구를 거절했다. 이웃 간 다툼은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2014년 1월 시작된 이들의 소송은 판결까지 꼬박 2년이 걸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71단독 김영수 판사는 “C씨는 A씨에게 188만원을, B씨에게 690만원을 배상하고 방수공사를 이행하라”고 판결했다고 3일 밝혔다. A씨와 B씨는 재판에서 이겼지만 지난 2년간 물이 새는 천장 아래서 생활해야 했다. 서울의 한 판사는 “감정(鑑定)에 들어간 비용까지 따지면 완벽한 승소라고 보긴 어렵다”고 평가했다.

앞으로 이 같은 ‘생활분쟁’ 사건의 재판이 더 빠르고 충실해진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달 22일부로 ‘생활형 분쟁 집중처리부’를 신설하고 A씨 사건을 심리한 민사71단독과 29, 34, 95단독 재판부 등 4곳을 집중처리부로 지정했다. 이 재판부는 돈을 빌려주고 못 받아 빚어지는 대여금(貸與金) 분쟁을 비롯해 신용카드 대금, 자동차 사고 손해배상, 부동산 임대차, 임금 등 생활분쟁 사건을 전담 심리한다.

그간 서울중앙지법에 접수된 생활분쟁은 연 1만건에 달했다. 중앙지법에 설치된 민사단독 재판부는 총 50곳이다. 재판부당 월평균 16건씩 배당되는 셈이었다. 모두 제때 처리하려면 이틀에 1건꼴로 선고해야 했다. 법원 관계자는 “2014년 전국 법원의 민사단독 사건 평균 처리기간은 약 5개월(160.8일)”이라며 “생계와 밀접한 사건도 결론까지 5개월 이상 소요됐던 게 현실”이라고 했다.

법원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방안은 ‘맞춤형 사건처리’ 시스템이다. 서울중앙지법은 당사자 간 다툼이 적거나 분쟁 수위가 낮은 사건을 ‘신속처리 절차(Fast Track)’로 구분했다. 사건 접수 2∼3주 안에 첫 기일을 잡고, 기일이 끝나면 2주 안에 선고가 이뤄진다. 기존엔 분쟁 수위가 높은 사건과 낮은 사건이 재판부별로 한꺼번에 배당됐다. 구분 없이 배당되는 통에 빠르게 처리될 사건들도 자기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집중처리부 중 한 곳인 서울중앙지법 민사95단독 안승훈 판사는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속을 태우던 D씨 사건의 첫 재판 기일을 22일로 잡았다. D씨의 집주인은 지급명령을 받자 별 이유 없이 법원에 이의신청을 했다. 다른 재판부였다면 ‘처리 순번’을 기다려야 했겠지만 안 판사는 사건을 배당받자마자 첫 기일을 잡았다. 만약 집주인의 추가적인 주장·입증이 없다면 2주 안에 판결이 선고된다.

분쟁이 치열한 사건이라면 민사71단독 재판부로 넘어간다. 이곳에선 법조 경력 15년 이상의 경륜 있는 법관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사건을 집중 심리한다. 법원 관계자는 “분쟁 수위가 높은 사건은 빠른 선고만이 능사가 아니다”며 “사건 당사자는 1심에서 경륜 있는 법관의 충실한 심리를 받고, 재판부는 분쟁 사건 노하우를 쌓게 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중앙지법은 또 임대차 분쟁의 경우 재판 전에 조정절차를 거치는 ‘특별처리절차’를 이달 중순 추가 도입할 예정이다. 건물 인도나 임대차 보증금 반환 사건 등에서 답변서가 오면 2∼3주 안에 상근조정위원을 통해 조정절차를 거치도록 돕는다. 답변서가 오지 않을 경우 소장부본 송달 후 30일이 지나면 2주 내로 선고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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