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지난 5일 타결된데 이어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방문 중 가입을 공식화함에 따라 우리 앞에는 또다른 거대 경제블록이 성큼 다가왔다. 정부는 다음달 초 예정된 협정문 공개에 앞서 관계부처·전문가들과 함께 ‘TPP 협정문 분석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대응하는 등 분주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세기부터 세계 각국은 완전한 자유무역이라는 이상향을 실험하기 위해 애를 써왔다. 1947년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이 발족된데 이어 약 50년 후 세계무역기구(WTO)가 조직되면서 자유무역주의의 기치가 본격적으로 드높여졌다. 이후 각 나라는 이견과 갈등을 보이면서도 강자와 약자의 약육강식 구도가 아닌 평등한 무역을 위해 조금씩 전진해왔다.
하지만 국가의 본능이 없어질 수는 없다. 특히 세계경기 침체하에서는 자국 보호라는 미명하에 폐쇄주의 경제질서가 똬리를 트곤 한다. 자유무역이 국가 간 차별이 없다는 전제하에서 출발했다면 보호무역주의는 우리 문은 닫고 남의 문을 열려는 이익 극대화를 표출하고 있다. 정치·경제적 패권을 쥐기 위한 야망도 자유무역의 순수함을 훼손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자유무역주의와 보호주의의 물결에서 슬기로운 대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GATT로 출발한 자유무역주의 변천사=대공황과 보호무역주의가 2차세계대전의 한 요인이었다는 점을 교훈 삼아 발족한 GATT는 국가 간 완전한 자유무역를 주된 이념으로 삼았다. 즉 전쟁에서 나타난 경제적 요인을 자유무역을 통해 최대한 없애자는 취지였다. GATT는 무역거래시 상대 국가와 차별이 없는 ‘최혜국(最惠國) 대우’, 외국 기업에 대해 자국 기업 수준의 특권을 보호해주는 ‘내국민 대우’를 의무화하도록 요구했다.
GATT가 자유무역의 촉진에 이바지하긴 했지만 규제 대상이 공산품 위주의 상품무역에 한정된 점, 협정을 어긴 국가에 대한 강제 규제 미미 등은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각국은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고 GATT 체제를 다자간 무역기구로 발전시키려는 국가 간 협상을 1986년 우루과이 푼타델에스테에서 시작했다. 이것이 우루과이라운드다. 우루과이라운드의 협상 결과를 바탕으로 협정 이행감시, 분쟁기구 해결을 위한 국제기구 필요성에 중지가 모아졌고 결국 95년 WTO가 설립됐다. WTO는 상품뿐만 아니라 농산물, 서비스, 지적재산권 등의 자유로운 교류·거래를 추진했고 구속력 있는 이행수단도 사용하고 있다. 112개국으로 출발한 회원국 수는 2015년 현재 161개국에 달한다.
◇양자 FTA에서 메가 FTA로…진화와 경쟁 벌이는 자유무역주의=WTO는 발족 이후부터 본격적인 자기 색깔을 내기 시작했다. 자유무역의 대상을 기존 제조업에서 모든 분야로 늘리는 협상이 2001년부터 실질적으로 추진됐는데 이를 이른바 도하라운드 협상으로 일컫는다. 하지만 이 협상은 회원국 간 입장차가 너무 커 쉽게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각 나라들은 다자간 협상의 어려움을 인식해 2000년 전후부터 각 나라의 경제특성, 시너지 효과 등을 고려, 마음에 맞는 나라끼리 상호 협정을 맺어 자유무역을 추진해왔다. 이것이 지금의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52개국과 협상을 벌이고 있으며 15국(지역 포함)과 FTA를 타결, FTA 시장규모가 세계 3위 수준(전세계 국내총생산의 약 73.5%)이다.
이처럼 쌍방 FTA 체결 국가가 늘어나면서 각국은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이 되레 유리해졌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 미국과 일본이 주도한 TPP는 FTA를 다자간 협상으로 격상시킨 대표적인 협정이다. 여기에 맞서 중국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추진하면서 다자간 협정의 기폭제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TPP 타결과 맞물려 RCEP는 지난 16일 부산에서 10차 협상을 마치면서 실질적인 논의 단계로 돌입했다.
◇넓어진 자유무역 대상 속 보호무역과 견제심리도 엄존…치밀한 외교전 병행돼야=각종 장벽과 규제를 철폐하는 자유무역이 어느때보다도 활성화돼 있지만 보호무역의 움직임도 동시에 늘어나고 있는 점은 아이러니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작된 세계적 경기침체의 영향이 크다. 경기부진으로 각국 산업 성장세가 둔화되자 자국 기업 살리기와 자유무역을 통한 경제영토 확산이라는 상반된 정책이 거리낌없이 표출된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주승용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 제출한 ‘한국제품 무역규제 제소 현황’에 따르면 8월말 현재 전 세계로 수출된 한국산 제품이 반덤핑,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등으로 조사를 받고 있거나 규제 중인 건이 29개국에서 총 162건에 달했다. 우리와 FTA를 체결한 인도가 25건의 제소로 가장 많았고 미국 16건, 터키 15건 순이었다. 연도별 신규 제소 건수는 2010년 25건에서 지난해 40건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산업부 김학도 통상교섭실장은 지난달 22일 열린 ‘통상법 포럼’에서 “정부가 업계와 긴밀히 협조해 WTO 규범에 합치하지 않거나 수출 경쟁력 확보에 타격을 주는 외국의 수입규제 조치에 적극 대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자유무역협상이 갈수록 강대국 패권주의의 장이 되고 있는 점도 자유무역 활성화에 장애가 될 수 있다. TPP는 단순한 경제블록이 아니라 중국의 경제 팽창을 견제하기 위한 미·일의 신 경제동맹이라는 사실은 당연시 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TPP 타결 이후 “우리는 중국 같은 국가가 전 세계 경제의 규칙을 쓰게 할 수 없다”고 노골적으로 이번 협정의 성격을 드러냈다. 중국 역시 최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출범시킨데 이어 RCEP 연내 타결,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 구상을 통해 자국 주도의 새로운 국제경제 질서를 세우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제현정 연구위원은 “경제가 안 좋아지면 보호무역주의가 거세지기 때문에 FTA와 무관하게 우리나라는 보호무역 조치에 대비해야 한다”며 “미국과 중국 간 패권주의가 경제분야에서도 심해지고 있어 우리나라가 TPP 가입을 통해 일종의 밸런스를 맞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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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TT부터 TPP까지… 지구촌 자유무역주의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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