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뭄, 굶주린 개가 사람을 물다
‘작년에도 비가 안 와 기우제 지내고 하다가 겨우 심어 논께 나중에는 홍수로 싹 씻어 버렸지. 글고 보면 하나님이 꼭 계시다고 할 수도 없어 잉….’
1930년대 발표된 박화성(1904∼1988) 소설 ‘한귀’의 한 대목이다. 나주평야 영산강을 무대로 가뭄과 싸우는 인간의 비극을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잘 드러낸 작품이다. 박화성의 언니 박경애는 광주 수피아여고를 나온 신여성으로 나주 광암교회에서 복음을 전했다. 목포에 살던 박화성이 광암교회를 방문하곤 했는데 그 무렵 농사꾼들은 가뭄 재앙을 맞고 있었다. 작품에선 가뭄에 굶주린 개가 말씀대로 사는 교인 성섭의 아내를 물어뜯는다.
# 관정 기술과 정부 대책을 믿는 주민들
세상 사람들은 ‘충청의 재앙’이라고 말했다. 충남 당진 보령 서산 서천 예산 청양 홍성 등을 중심으로 한 극심한 가뭄을 두고 하는 얘기다. 그러나 지난 26∼27일 예산 예당저수지를 중심으로 둘러본 그곳 주민들은 그리 애타는 심정이 아니었다. 벼 수확이 한창이었고, 사과가 가지마다 주렁주렁했다. 차량이 빠르게 지나는 국도 변에선 특산 예산 사과 매장이 문전성시였다.
주민들은 “(이대로 비가 계속 안 온다면) 내년 농사가 걱정”이라고 했지만 아직 제한 급수 등이 시행되지 않아서 그런지 ‘해결 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관정 기술과 4대강 등을 개발한 정부의 치수 능력을 믿는 듯했다.
정부는 지난 21일 예산 예당저수지 인근 대흥면사무소에서 ‘가뭄 관계기관 합동 대책회의’를 열었다.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 등이 참석했다. 이완섭 서산시장은 이날 보여주기식 행정을 빗대 “빈손으로 올 거면 차라리 오지 말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앞서 황교안 국무총리, 이동필 농림축산부장관 등이 충남의 가뭄 현장을 방문했다. 가뭄 문제에 대해 국민의 감각은 무뎠다. 또 정부는 당장 시급한 ‘국정교과서’ 문제 등에 매달리느라 무대책이다.
# 뭍이 된 좌대 ‘이국 풍경’
28일 현재 예당저수지의 저수율은 예년의 20%를 밑돈다. 지금 이 저수지는 우리나라 가뭄 문제의 상징적 장소가 됐다. 면적 9.9㎢, 둘레 40㎞, 너비 2㎞, 길이 8㎞의 우리나라 최대 관개 저수지. 또 낚시 명소이자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국민관광지’가 됐다. 저수지가에는 모텔과 펜션, 캠프장, 음식점 등이 즐비하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유락 단지로만 보았지 누구도 ‘생명수’로 인식하지 않았다. 이 거대한 저수지가 마르리라곤 상상을 못했다. 당장 마실 물이 없는 불편함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27일 비가 조금 내렸다. 그러나 ‘언 발에 오줌 누기’였다. 드러난 지면만 적셨을 뿐이다. 그 지면은 이내 초원이 됐고, 좌대는 초원의 ‘그림 같은 집’처럼 보였다. 관광객들은 ‘이국의 풍경’을 스마트폰에 담으며 인증샷을 찍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호수가의 교회들, 절절한 새벽기도
수변에 십자가가 빛났다. 저수지 중심권인 대흥면 소재지의 대흥교회를 따라 시계방향으로 돌면 구세군평촌영문, 대야리교회, 안골교회, 월계감리교회 등 10여 교회가 지역복음화에 힘쓰고 있다.
이들 교회는 요즘 새벽 제단을 쌓으며 가뭄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지켜 달라고 간구한다. 예당저수지 수량이 하루가 다르다. 안골교회 하늘숨학교 김진희 교장은 “우리 동네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충청도 전체, 나아가 나라의 기근이 될까 걱정스럽다”며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탐욕으로 하나님 섭리를 무너뜨리는 일이 없도록 생태계를 회복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늘숨학교는 훼손되지 않은 자연 속에서 창조주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청소년영성학교다.
대야리교회는 12명이 출석하는 미자립교회다. 모두 60대 이상이다. 교회 앞 논은 벼를 벤 곳도 있었고, 수확을 앞둔 곳도 있었다. 이들은 매일 새벽 5시 통성으로 기도한다. 가뭄 해갈이 기도 제목이다. 이들은 엘리야처럼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늘의 뜻을 따르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우리의 갈급함을 적셔 줄 것으로 믿고 있다.
이 작은 시골교회 김종억 목사가 귀 뚫리는 말씀을 했다. “사람들은 큰 강에서 물을 끌어와 쓰면 그깟 가뭄 정도 극복 못하겠느냐 하는 교만에 빠져 있다”며 “하나님의 경종을 알아채지 못하고 늘 수단과 방법만을 찾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자연 질서가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건일 수 있다”고 말했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 “더는 고기를 잡을 수가 없어요”
대야리 인근 한 농가에서 부부가 탈곡한 벼를 마당에서 말리고 있었다. 40여년 전 인근 동네에서 시집와 남편과 함께 어부 생활로 2남 1녀를 키운 서갑숙(60)씨. 그는 “40여년간 예당저수지에서 붕어, 잉어 등을 잡아 살아왔는데 지난해부터 물이 줄어 어업을 포기했다”며 “뭔 하늘의 조화인지 몰라도 불안하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그가 배를 댔던 집 앞 시멘트 부두는 을씨년스러웠고 부두 앞은 수백 미터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농어민들이 인식하는 ‘하늘의 조화’는 때론 말씀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 월계감리교회 김세종 목사는 “하나님의 또 다른 계획이 있지 않을까 인내하면서 성도들과 함께 가뭄 극복을 위한 기도를 계속하고 있다”며 “평생 노동의 수고로 살아온 농촌 사람들은 ‘내가 일할 수 없을 때 교회에 가겠다’고 하시는데 정작 복음을 접하면 ‘내가 왜 빨리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까’ 후회하신다”고 말했다.
자연과의 싸움을 통해서 ‘극복’만을 배운 이들은 자신들이 인식했던 ‘하늘의 조화’가 말씀 안에 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는 것이다.
# 가뭄, 바알 숭배에 따른 경고
대흥교회 서광진 목사의 성서적 시각도 크리스천이 가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온 나라가 우상숭배에 여념이 없습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죽은 우상들까지 끌어내 축제라는 이름으로 살려놨어요. 미신의 몽매한 형상물조차도요. 제가 사는 리(里) 단위에도 어느 날 밑도 끝도 없는 허접한 망부석이 세워져 신화가 됐으니까요. 솟대, 성황당, 동물형상 바위 등을 섬기는 크고 작은 우상 축제가 전국적으로 수천개가 될 겁니다. 영적 눈으로 보자면 나라의 가뭄은 바알 숭배에 따른 경고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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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글·사진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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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르포] “하늘의 조화는 말씀 안에 있으니…” 기도 소리 높아지고 있다
가뭄에 고통받는 충남 교회는 지금 기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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