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 중구 소파로 여명학교(교장 이흥훈)에서 탈북 청소년들을 교육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나를 빈민촌에서 태어나게 했고, 외국인 노동자들을 섬기게 했으며, 중국에서 탈북자를 구출하고 국경을 건널 수 있도록 돕게 하셨다. 비록 그때는 힘들고 포기하고 싶었지만 통일세대를 키우는데 거쳐야 하는 관문이었음을 다시 한번 느끼고 있다.
나는 서울 상계동 노원마을이라는 빈민촌에서 나고 자랐다. 대부분의 가장들은 공사판에서 일했다. 온종일 자신이 가진 에너지의 배 이상을 짜내며 일해야 했다. 아버지들은 새참으로 나온 막걸리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렇게 아버지들은 당신이 처한 삶의 무게를 견뎌냈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아버지는 중동의 노무자로 가셨다. 수입이 생기자 어머니는 집에 밥을 얻어먹으러 오는 거지들에게 “우리 집에서라도 따뜻한 밥을 먹으라”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챙겨주셨다.
아버지가 중동에 가신 이후 어머니는 생활에 보탬이 되고자 부엌에서 작은 막걸리 가게를 시작했다. 어머니 음식 솜씨가 좋아 단골이 늘어갔다. 주린 배와 고픈 술을 막걸리로 채우는 사람들이 가게 앞에 많았다. 그들 중에 몸이 불편한 한 아저씨를 잊을 수 없다. 다른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만 보면 “요놈, 이쁜 놈들” 하면서 안아주려고 했다. 처음엔 치한인줄 알고 도망치기도 하고 놀리며 돌을 던지기도 했다. 아저씨는 다른 어른들과 다른 눈빛으로 아이들을 바라봤다. 그 눈빛이 점점 신경 쓰여 잠까지 오지 않을 정도였다. 아저씨는 정말 아이들을 예뻐했다. 너무 귀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여겼다. 그래서 그런 눈빛을 보냈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한번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본 적이 없었던 나는 아저씨의 눈빛을 통해 인간에 대한 사랑을 배울 수 있었다.
나는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다. 미션스쿨인 정의여고에 입학해서 하나님을 알게 됐다. 공부도 못하고 꿈도 없었지만 성격은 좋아서 주변에 친구들이 많았다. 하루는 친구들과 떡볶이 내기를 했다. 내기 방법은 ‘잘생긴 교목님과 누가 더 오래 이야기를 하나’였다.
자신 있었다. 내기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일단 교목실에 들어가 굳은 표정으로 “목사님 예수가 누구예요?”라고 물었다. 목사님은 나를 앉혀놓고 40분 이상 예수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해 주셨다. 이미 내기에서 이길 수 있는 시간은 한참 지났다. 점점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표정을 읽은 목사님은 웃으며 말했다.
“돌아오는 주일부터 교회에 나가거라. 그 약속만 하면 보내 줄께.” 겨우 목사님과 약속을 하고서야 교목실을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주일에 용기를 내어 교회에 나갔다. 마침 성찬식이 열리고 있었다. 포도 주스를 포도주라고 생각하고 마시라는 목사님의 말씀에 성도들을 따라 목사님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잔에 주스를 받았다. 처음 겪는 일이라 이후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던 나는 옆에 있던 다른 학생에게 잔을 내밀라고 눈짓했다. 그리고 유리잔을 부딪치며 “건배”를 외치곤 단숨에 들이켰다.
황당하기 그지없는 나의 행동에 목사님을 비롯한 예배당에 모인 성도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하지만 누구 한 명, 이런 나의 행동을 탓하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다음에도 나오길 권면하며 기다려줬다. 우리 동네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이들을 교회에서 만났다. 문득 예수님이 그들을 그렇게 변화시켰다고 생각했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약력=1970년 서울 출생, 단국대 한문교육과 졸업, 연세대 교육행정 석사, 두레자연고등학교 한문·사회교사, 자유터학교 교장, 현 피난처 이사, 여명학교 교감, 통일준비위원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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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조명숙 <1> ‘잘생긴 교목과 말하기’ 내기하다 나가게 된 교회
“예수가 누구예요” 묻자 40여분 설명… 출석 첫날 성찬식 포도 주스로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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