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정권의 대표적 ‘군 의문사’인 허원근 일병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사인(死因)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군 당국, 의문사위원회, 1·2심 법정 등에서 4차례 결론이 엇갈린 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최종 판단이다. 사건 발생 후 31년, 법정 공방에만 8년5개월이 걸렸지만 유족이 원한 실체적 진실은 끝내 ‘영구미제’로 남게 됐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허 일병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가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는 2심 판결을 10일 확정했다. 대법원은 군 헌병대의 초기 부실수사로 사인을 명확히 밝힐 수 없게 된 책임을 국가가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최대 쟁점이던 자살이냐, 타살이냐에 대해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최전방인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 철책근무지에서 복무 중이던 허 일병은 1984년 4월 2일 내무반 근처 폐유류 창고 뒤에서 양쪽 가슴에 2발, 머리에 1발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22세였다. 사건 직후 헌병대는 중대장의 가혹행위에 시달리던 허 일병이 M16 소총으로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90년 육군 범죄수사단, 95년 육군본부 법무감실의 재조사 결론도 같았다.
하지만 2002년 9월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부대원들의 진술을 토대로 타살 결론을 내렸다. 허 일병이 내무반에서 술자리 시비 끝에 다른 부대원에게 총상을 입었고, 폐유류 창고로 옮겨져 가슴과 머리에 추가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는 내용이었다. 은폐 목적에서 내무반이 물청소됐다는 내용도 발표됐다.
의문사위의 발표 직후 꾸려진 국방부 특별조사단은 3개월 만에 재차 자살이라는 결론을 내놨다. 의문사위는 2년 뒤 군 발표를 다시 뒤집었다. 법의학자들도 의견이 엇갈린 가운데 유족은 2007년 4월 국가배상금소송을 냈다.
2010년 1심은 허 일병이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자살했을 것 같지 않고, 휴가 전날 자살할 이유가 없었다며 타살로 판결했다. 시신이 발견된 폐유류고 주변에 혈액 등 흔적이 거의 없었던 점도 타살에 무게를 실었다. 반면 2013년 2심은 자살로 봤다. 소속 부대 중대원들 모두 알리바이가 있고, 허 일병과 비슷한 신체조건의 사람이 M16 소총으로 머리와 가슴을 스스로 쏘는 게 꼭 불가능하다고는 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대법원은 2심의 판단에 대해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머리에 다시 총을 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다만 타살을 증언하는 부대원들의 진술은 의문사위 조사 이후 번복돼 신빙성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할 때 타살로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정확한 사망시각, 사체 발견 장소 등을 알려줄 초기 수사가 부실해 타살·자살 어느 쪽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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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원근 일병 軍 의문사’ 미궁 속으로… 국가, 유족에 3억 배상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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