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창업자 중 가장 늦게까지 현역으로 활동했던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28일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에서 해임되면서 사실상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1922년 경남 울산 삼남면 둔기리에서 5남5녀 중 맏이로 태어난 신 총괄회장은 41년 단돈 83엔을 들고 관부(關釜) 연락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신문과 우유배달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신 총괄회장은 조선인이라는 불리한 상황을 신용을 통해 극복해갔다.
44년 신 회장을 지켜봐오던 일본인 사업가 하나미쓰로부터 “군수용 선반 오일이 품귀 상태이니 자네가 공장을 차려 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과 함께 5만엔을 출자 받았다.
하지만 공장을 본격적으로 가동하기도 전에 미군의 폭격으로 공장은 잿더미가 됐다. 빚을 지게 된 신 총괄회장은 다시 우유배달을 하며 사업자금을 마련했다.
이후 광복 이듬해인 46년 일본 도쿄에 ‘히카리특수화학연구소’라는 공장을 짓고 비누 크림 등을 만들어 팔았다. 1년 반 만에 빚을 다 갚은 신 총괄회장은 48년 제과회사인 롯데를 설립했다. 문학을 좋아했던 그는 감명 깊게 읽었던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여주인공 ‘샤롯데’에서 회사 이름을 따왔다.
미군 주둔 후 미군이 씹던 껌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껌 사업에 뛰어들어 차츰 성공을 거뒀다. 61년 초콜릿 사업으로 눈을 돌린 후 캔디, 비스킷,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갔다. 65년 한일수교로 한국에 대한 투자가 가능해지자 67년 국내에 롯데제과를 설립해 국내 사업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어 호텔, 유통 등에 잇따라 진출하며 현재 롯데그룹의 기틀을 마련했다.
한·일 고도성장기와 함께 그룹의 규모도 커지면서 90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억만장자 순위 9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한국 롯데그룹을 계열사 80개를 거느린 연 매출 83조원의 재계서열 5위 그룹으로 일구었다.
신 총괄회장은 거화취실(去華就實·드러나는 화려함을 배제하고 내실을 지향한다)을 경영 이념으로 내세우며 아흔이 넘도록 현역에 머물렀지만 아들 간 경영권 다툼으로 2선으로 물러나게 됐다.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 등과 일본에 동행하면서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숙원사업이던 롯데월드몰 관련 보고를 받고는 있지만 독자적인 판단과 의사 표현이 힘들어진 탓에 신 전 부회장의 부추김으로 일본까지 가게 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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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창업서 퇴진 67년, 신용 바탕 日서 창업… 껌 사업으로 성공가도
초콜릿·캔디로 사업 확대 1세대 창업자 마지막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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