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소녀 ‘한송이’ 남한 적응 도와주세요”… 소설 ‘나의 아름다운 첫 학기’ 펴낸 이근미 작가

탈북자 2만7000여명 중 청소년이 2000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모가 먼저 탈북한 뒤 돈을 모아 자녀들을 탈출시키는 게 일반적이다. 부모는 의지를 갖고 남쪽을 향하지만 청소년들은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우리 사회로 오게 된다. 사춘기에 낯선 환경 속으로 불쑥 진입한 탈북학생들은 과연 어떻게 이런 ‘신세계’를 헤쳐 나갈까? 또 이들을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보듬어야 할까?

이런 의문을 담아 교육적이고 계몽적인 소설책이 선을 보였다. 이근미 작가가 쓴 ‘나의 아름다운 첫학기’(도서출판 물망초)란 제목의 이 책은 ‘탈북’과 ‘통일’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특유의 밝고 명랑한 얘기로 풀어내 탈북 청소년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중학교 2학년 탈북 여학생 한송이가 남한 학교에 적응해나가는 모습을 담은 이 소설은 청소년용으로 쓰여졌다. 아기자기한 에피소드가 가득 담긴 따뜻한 소설이지만 탈북자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억센 북한식 억양 때문에 자신을 드러내기 힘든 탈북 청소년들은 학업을 따라가는 데도 애를 먹는다. 이 소설은 주인공 한송이를 돕는 많은 사람들의 손길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탈북청소년들을 대해야 할지, 소설이란 장르를 통해 알려주고 있다.

“글을 쓰는 내내 부모님을 긴장시키며 사춘기를 마음껏 누리는 우리나라의 무서운 중2들과 너무도 다르게 사는 북한의 15세들 생각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작가 이근미 씨는 “미래를 꿈꾸며 열심히 달려야 할 글로벌 시대에 고픈 배를 움켜쥐고 거짓정보를 주입받는 북한 청소년들의 처지가 안타까웠다”며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북에서 온 친구들을 따뜻하게 맞아주고 이해하길 기대 한다”고 설명했다.

이 책이 특별한 것은 탈북대학생 설지현(26) 설철국(24) 형제가 삽화를 그렸다는 점이다. 평안남도 안주가 고향인 이 형제는 1999년에 탈북, 8년 6개월여를 중국에서 숨어 지내며 갖은 고생을 겪었다. 한창 자랄 나이에 방안에서 햇볕을 못보고 자란 형제는 탈출할 때 잘 걷지도 못할 정도였다. 형제는 몽골을 거쳐 2007년 9월 한국에 들어왔다. 미술대학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아 형은 현재 국민대학교 중어중문과에 재학 중이고, 동생은 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에 재학 중이다.

철국 씨는 “입시에 실패한 뒤 얼마간 방황했으나 이번 삽화 작업을 통해 전문 일러스트레이터의 꿈을 다시금 키워가고 있다”며 “한국 사회가 탈북자 뿐 아니라 그 자녀들에게도 애정어린 시선을 가져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책에서 주인공은 처음 한국에 와 사람들의 말도, 거리의 간판도, 온통 영어투성이여서 머리가 아팠다고 설명한다. 로션, 머그컵, 샤프펜슬같이 일상에서 쓰는 물건에서부터 말할 때마다 튀어나오는 셀프, 이벤트, 다이어트 같은 단어까지 남쪽 사람들은 영어를 아예 한글처럼 사용해 곤란을 겪는 모습이 나온다. 아울러 북한에서 중국을 거쳐 남한으로 오기까지의 과정을 밝히는 하소연은 독자의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

“엄마가 6년 전에 한국에서 돈을 모아 중국 브로커를 우리 집까지 보냈어요. 그 아저씨랑 캄캄한 밤에 두만강을 건너는데 정말 무서웠어요. 물을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몰라요. 나를 한국으로 빨리 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엄마가 돈을 많이 주었다는데, 중국 아저씨는 나를 선교사님 집에 밀어 넣고 도망가 버렸어요. 중국에서 라오스로 태국으로 빙빙 돌아 한 석 달 만에 한국에 왔어요. 같이 도망 나온 어른들한테 너무 험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한국에 정말 올 수 있을까, 걱정이 많이 됐었지요. 중국을 벗어나서도 잡혀가는 사람들이 있다 해서 날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했어요. 지금도 자다가 놀라서 벌떡 일어날 때가 있어요.”

독실한 크리스천인 작가는 이 책을 쓰는 내내 시편 “네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란 말씀을 핵심 키워드로 삼았다. 그는 “시사잡지 객원기자로 일하면서 북한 사정과 여러 탈북자들을 접해 소설을 쓰는 게 어렵지 않았다”며 “우리 국민들이 북한 주민들의 힘든 삶과 탈북자들이 어떤 고통을 겪는지 너무 모르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책을 추천한 이정훈 인권대사는 “탈북청소년을 다룬 책이 거의 없는데 소설이 나와 매우 반가우며 이 책을 통해 북한주민들의 인권과 동포애를 기억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