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환 칼럼] 소박하게 살아가기

‘요즈음 우리 사회 부정부패를 가히 아노미현상이라고 해야 한다’라며 고민하는 한 젊은이에게 꼭 읽기를 권한 책이 있다.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다. 베버는 근대 자본주의가 어떻게 태동되었는가를 탐구하면서 금욕, 절제, 사명감, 소명의식 등의 개신교 윤리를 소개한다. 모든 직업을 하나님의 소명으로 믿는 개신교의 ‘청지기 정신’은 자연스럽게 부의 축적으로 이어져 자본주의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청지기 정신’을 찾아보기 힘들다. 왜 돈을 벌어야 하는지에 대한 목적은 상실되고, 그저 재산축적만을 추구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필자는 그 청년에게 “우리 사회의 심각성을 자본주의 때문이라고 비난하기 전에 자본주의 정신 회복을 위한 작은 역할이라도 함께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얼마 전 미국의 한 TV에서 방영한 ‘소박하게 살아가기’라는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프로그램은 주제에 따라 계절시리즈로 모두 39회에 걸쳐 여러 해 동안 제작방영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중산층 가정을 주요 대상으로 검소하고 친환경적인 삶의 가치를 소개했다. 금욕, 절제 등의 자본주의 정신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 셈이다.

이 프로그램은 ‘아주 작은 것이 큰 차이를 만든다’는 표어로, 쓰레기통에 버리려던 서류집게를 모으고, 60년대 어머니가 입던 치마를 커튼으로 재활용하고, 물 절약형 변기를 사용하는 등 모두가 실천할 수 있는 것들로 출발한다. 이어 물물교환, 공동구매, 천으로 만든 행주와 걸레 사용하기, 도시 녹지조성, 개인용 컵 소지하기, 한 가정 차 한 대 캠페인 등을 소개해 일상적인 낭비를 줄이자고 호소했다. 또 낡은 주택을 에너지 절약형 친환경주택으로 개조하는 작업을 중계하기도 했다.

‘폐기되기를 거부하는 물품’이란 시리즈가 있었는데, 유통기한이 훨씬 지났음에도 여전히 사용 중인 물품을 소개했다. 한 시골 이발소에서 사용 중인 1923년형 금전등록기가 소개됐다. 신형 금전등록기로 교체해 주겠다는 제안을 여러 차례 사양했다고 한다. 자신이 쓰는 금전등록기는 고장 나는 법이 없고, 전기 없이도 거뜬히 작동하고 있어 가끔씩 기름칠만 해주면 되는데 굳이 바꿀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물품들이 줄지어 등장했다. 그 중에는 1920년대에 나온 포드 자동차가 있었고, 1960년에 사서 50년 동안이나 입고 있는 옷들도 있었으며, 900년이나 존속하고 있는 소금광산은 ‘폐기되기를 거부하는 사업’으로 소개됐다.

소박한 교회도 소개됐다. 매사추세츠 주의 웨이랜드의 한 교회는 ‘당신의 영혼을 구원하려면 자전거를 타고 다니거나, 걸어 다녀야 합니다’라는 ‘청지기 정신’을 강조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이 교회의 성도들은 예배에 참석하러 올 때 걸어오거나 자전거를 타고 와야 한다. 목사님은 자전거를 축복하는 순서로 예배를 마쳤다. 그래도 거리가 먼 성도들이 카풀로 오는 것은 용납하고 있었다. 이 교회를 생각하니 마음이 흐뭇하다.

전통적으로 한국교회는 근검절약을 실천하며 청지기 정신에 투철했었다. 교회 중고등부의 수련회 프로그램에도 금식이 빠지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도 소박한 교회를 추구하는 소식을 최근에 자주 들을 수 있어서 기쁘다.

이 프로그램 제작팀의 책임자 완다 우르반스카는 “우리들이 사무실에서 하이파이브를 하며 최고로 열광했던 순간은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부부와의 인터뷰 기회가 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고 했다. ‘소박하게 살아가기’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아이콘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재임기간 동안, 이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소박한 삶을 실천하는 모범을 보여주었다. 그는 취임사에서 “더 많은 것을 가진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최선은 아니라는 것…”이라고 했다. 1977년 대통령 취임 축하 파티에서 영부인 로잘린의 드레스는 그녀가 보여주는 ‘폐기되기를 거부하는 물품’의 상징적인 예였다. 1971년 카터의 주지사 취임기념파티 때 입었던 의상을 다시 꺼내 입었던 것이다. 지금도 해비타트 활동을 하면서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하며 청지기 정신을 실천하는 90대 노정치인을 생각하니, 간절히 기도하게 된다.

김종환(서울신대 상담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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