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박인용] 안전사회로 가는 새로운 변화의 시작

숱한 전쟁으로 세계를 정복한 고대 로마제국의 군대가 오랫동안 막강한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한 전투에서 패하면 곧바로 패배의 원인을 분석하고, 적군의 전술과 무기 체계를 배우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로마제국을 상징하는 짧고 굵직한 칼은 오랜 적국이던 사비나족의 무기였고 사각밀집 대형은 그리스군에 배운 것이었다. 무서운 표창인 ‘파일럼’은 스페인 반도 원주민들의 것이었다.

최근 발생한 일련의 사고들을 보면서 왜 이런 고통과 슬픔을 겪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가 재난 극복의 역사라고 한다면 우리 삶 속의 재난들도 지혜와 힘을 모아 넘어야 할 숙제일 수밖에 없다.

다양한 재해·재난을 어떻게 예방·대비할 것인지, 불가피한 사고에 어떻게 신속하게 대응할 것인지, 그리하여 안전한 사회, 안전한 대한민국은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는 우리가 직면한 고민이다. 정부가 최근 마련한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은 이런 고민을 담아낸 결과물이다. 과거 대형 재난사고로부터의 교훈과 반성을 통해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과제를 담은 실천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수립하지 않고 전문가나 재난현장 종사자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했고, 국민들이 보내준 참신하고 소중한 아이디어를 더해 100개의 혁신과제로 구성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핵심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재난안전관리 컨트롤타워 기능을 확립하는 것이다. 종래 분산적으로 추진되었던 재난관리가 국민안전처를 중심으로 수평적·수직적 협업 하에 통합적 재난관리체계로 전환된다. 재난발생 시 국민안전처가 중앙대책본부가 돼 총괄 조정·지원하게 되고 중앙수습본부와 지역대책본부 간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해 일사불란하게 대응하게 된다. 이를 위해 현장지휘체계, 재난통신, 공보 등 재난관리 표준체계를 조속히 확립할 계획이다.

둘째, 지자체의 재난대응 역량을 높이고 책임성을 강화해 안전자치 실현을 도모하는 것이다. 지자체에 재난전담기구를 신설하고 재난안전특별교부세와 소방안전교부세를 통해 지방의 안전 재정력을 확충해 나갈 것이다. 또 시·도지사가 지역 차원의 재난에 책임감을 갖고 관리할 수 있도록 재난사태 선포권을 부여할 계획이다.

셋째, 민간이 주도하는 자율적 안전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마스터플랜에 담겨있는 안전신문고 활성화, 민관합동 국가안전대진단, 범국민 안전문화 운동, 민관합동 거버넌스 구축, 지역주민 참여 안전공동체 만들기 등은 모두 민간이 주도하거나 민간참여를 기본으로 하는 과제들이다. 넷째, 안전취약계층에 대한 안전 관련 지원을 확대해 안전복지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범정부 차원의 안전취약계층 컨설팅단을 구성해 어린이·여성·노인 등 안전취약계층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들을 찾아서 개선해 나갈 계획이다.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에 포함된 과제들을 일순간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부가 안전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국민과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이러한 과제를 묵묵히 수행한다면 안전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높아질 것이다. 재난안전관리체계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수준도 향상될 것이다.

‘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의 저자 찰스 페로 미국 예일대 교수는 ‘현대사회를 고위험 기술의 세계’라고 진단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위험사회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로마제국의 교훈처럼 우리의 안전문제를 잘 진단하고 고쳐나간다면 ‘안전한 나라 행복한 국민’ 실현은 그리 머지않다고 생각한다.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