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환 칼럼] 호모 엠파티쿠스

새 봄 대학 캠퍼스 새내기들은 교양과정에서 세계적 지성으로 알려진 필독서들을 소개받는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필자가 신입생이던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빠지지 않는 책 세 권이 있다. 1651년에 출간된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 1859년의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그리고 1930년의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문명과 그 불만’이다.

홉스의 주장은 ‘인간이란 선천적으로 사악하고 이기적인 존재여서 독재정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윈은 인간본성에 대해 더 다채로운 견해가 있었지만, 결국 생존투쟁과 적자생존 이론으로 홉스의 이기적 인간본성 이론을 일반화시켰다. 이는 최근에 인간 존재를 ‘유전자를 전달하는 기계’로 보는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에 이르러 ‘이기적 유전자’가 대중과학의 깃발이 되게 했다. 프로이트는 인간 본성의 희망을 철저히 파괴하려는 듯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을 무자비하게 비판하면서 “그것만큼 인간의 타고난 본성에 심각하게 위배되는 것은 없다”고 했다.

이처럼 인간본성을 이기적으로 보는 소위 호모 셀프센트리쿠스(homo self-centricus)가 지금도 지성사에 범람하고 있어 안타깝다. 이기적인 인간본성 이론만을 필독서로 하는 것이 비극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최근 인간은 ‘공감능력을 지닌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hicus)’라는 증거들이 충분히 연구·발표되면서 호모 셀프센트리쿠스가 확실히 밀려나고 있다. 이것은 곧 인간 본성을 새롭게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먼저 신경과학자들이 뇌의 거울 뉴런과 공감회로를 밝혀냈다. 이는 본래 인간의 본성이 상대방의 감정과 관점에 시뮬레이션하며 카멜레온 효과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동심리학자들은 두세 살짜리 어린아이도 타인의 감정과 관점에 적절히 반응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제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 부분과 대등한 공감적 부분이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공감 전문가 로먼 크르즈나릭은 최근에 그의 저서 ‘공감-혁명을 위한 핸드북’에서 이렇게 말했다. “호모 엠파티쿠스 관점은 교육, 정치, 경제, 문화에 새로운 사고의 물결을 촉발시켰습니다. 인간됨의 핵심에 공감이 있음을 깨닫기 시작하자 ‘이기주의 본성이론'은 낡은 사고방식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 시대에서 ‘네가 존재한다, 고로 내가 존재한다’는 공감의 시대로 넘어가는 대이동의 길목에 서 있습니다.”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는 공감을 선거운동 주제로 선택하고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 연방 재정이 적자라는 이야기를 많이들 합니다. 하지만 나는 우리에게 공감능력이 결여되었다는 이야기를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다른 누군가의 처지가 되어 보고, 우리와 다른 사람의 눈으로, 배고픈 아이들의 눈으로, 해고된 노동자의 눈으로, 당신의 방을 청소하는 이민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 공감결핍을 중요한 사회문제로 부각시킨 점은 분명히 옳았다고 본다. 최근 조사 통계에 의하면 공감수준이 대폭 낮아지고 있다. 특별히 지난 10년간 젊은이들의 감소폭이 가장 크게 나타났다. 1인가구가 많아지고, 공감적 감수성의 기회가 SNS로 박탈되면서 ‘나르시시즘이라는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는 셈이다. 사이코패스가 자주 뉴스의 초점이 되는 것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공감결핍이 극도에 이르면 사이코패스인 것이다. 그래도 “인류의 역사를 주도하는 가장 강력한 에너지는 공감이며, 미래는 확실히 ‘공감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우리 시대의 독보적인 사상가로 평가받는 제러미 리프킨은 말한다.

이 봄에 새내기들이 호모 셀프센트리쿠스 3인방의 그늘에서 벗어나 이제는 호모 엠파티쿠스의 거장들이 쏟아내고 있는 밝은 책들을 읽어야 한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프레임-인간본성과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김종환 (서울신학대학교 상담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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