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피살 ‘강남 자산가 할머니’ 보이스피싱 협박 받았다… 양손 묶인채 방에서 시신으로 발견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주택 2층 방에서 25일 숨진 채 발견된 수십억대 자산가 함모(88·여)씨가 몇 달 전부터 보이스피싱범으로 의심되는 남성에게 수시로 전화 협박을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함씨의 통화기록과 주변 CCTV 등을 확인하며 수사를 벌이고 있다.

함씨의 조카며느리 김모(69·여)씨는 26일 “고모가 몇 달 전 텔레마케터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남성의 전화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 남성이 ‘투자’를 권유하자 함씨는 “그런 게 어디 있느냐”며 호통을 쳤고, 언성이 높아지면서 서로 욕설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이후 이 남성이 수시로 함씨에게 전화해 협박과 욕설을 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함씨가 한동안 가족들이 건 전화도 받지 않았을 정도로 두려워했다”고 전했다.

사망하기 보름쯤 전에는 검은 모자를 쓰고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남성이 함씨를 찾아왔다. 김씨는 “고모가 문을 열어주자 그 남성이 대뜸 ‘들어가도 됩니까’라고 말하기에 ‘들어오긴 어딜 들어오느냐’고 소리치곤 가슴을 밀쳐 내보냈다고 한다”고 말했다. 남성은 별 다른 저항 없이 계단을 내려갔다. 함씨는 김씨에게 ‘도망가는 기색도 없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함씨는 일련의 사건 이후 김씨를 만나 이런 사정을 털어놓으며 하소연했다.

이웃들이 함씨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23일 오후 4시쯤이다. 함씨는 인근 한의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이틀 뒤인 25일 오후 4시50분 그는 시신으로 발견됐다. 발견 당시 두 손은 솜바지 속 끈과 휴대전화 충전기 줄로 묶여 있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26일 함씨의 사인이 ‘경부 압박에 따른 질식사’로 보인다고 밝혔다. 목이 졸려 숨진 것이다.

함씨는 6년 전 남편과 사별한 뒤 혼자 살았다. 함씨가 거주한 2층 주택은 매매가가 15억∼20억원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곳에서 500m가량 떨어진 곳에 132㎡ 크기의 아파트도 소유하고 있다. 함씨는 젊은 시절 명동에서 미용사로 일했고, 이불 장사 등을 해 상당한 재산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슬하에 자식은 없다.

김씨는 “가족들이 사준 휴대전화도 월 9000원의 요금이 아깝다고 해지했다”고 말했다. 이웃들은 “함씨가 최근까지 인근 식품업체에서 생식을 팔며 생활할 정도로 정정했다”고 전했다. 함씨는 지난 설에 가족들을 찾았을 뿐 평소 친인척과 왕래가 잦지 않았다고 했다.

경찰은 함씨의 통화기록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고, 김씨가 언급한 남성을 추적하고 나섰다. 서울 수서경찰서 관계자는 “CCTV나 블랙박스 등의 단서가 없어 수사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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