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김상기] 아버지

Է:2015-01-17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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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의 덕수는 병상에 누워 계신 아버지, 여행도 가고 효도하고 싶은데… 사랑합니다!

[창-김상기] 아버지
[창-김상기] 아버지
아버지. 며칠 전 영화 ‘국제시장’을 봤습니다. 한국전쟁 때 피란 내려와 부산 국제시장에 정착한 덕수씨의 일생을 담은 이야기였어요. 험난했던 시대를 굳세게 버티고 오늘의 한국을 일군 아버지 세대에게 찬사를 보내는 내용이었습니다. 천만 관객이 들 정도로 흥행했다지만, 저는 큰 기대 안 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눈물과 콧물이 어찌나 주책없이 흐르던지 휴지를 돌돌 말아 콧구멍에 틀어막고, 눈물이 줄줄 흐르는 턱에도 받쳐야 했습니다.

남자는 태어날 때와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 나라 망했을 때 세 번 운다고 철석같이 믿는 제가 이렇게 속절없이 무너진 건 바로 영화 속 덕수씨 모습에서 아버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병상에 누워계신 바로 우리 아버지 말예요. 아버지,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아버지의 고난과 역경을 제가 다 알 수 있을까요? 절대 모르겠죠. 어릴 때에는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고생담조차 잔소리라고 생각하고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그 옛날 칼바람이 부는 한겨울에 시골을 떠나 도시생활을 시작하셨죠. 그때 고생을 농담처럼 말씀하실 때마다 저는 다른 세상 이야기라며 흘려듣곤 했어요.

“그땐 겨울이 엄청 추웠지. 체감온도가 지금보다 10도는 더 낮았던 것 같아. 낡은 집으로 이사했는데 밤새 웃바람이 얼마나 불던지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천장에 붙은 고드름을 향해 걸레를 휙휙 던져야 했다니까. 그러면 다락에서 자던 쥐새끼들이 놀라서 후다닥 달아나곤 했지.”

영화에 보면 덕수씨가 파독 광부가 되기 위해 체력 검정을 하면서 쌀가마니를 들어 올리는 장면이 나와요. 아버지도 예전엔 힘깨나 쓰셨잖아요. 큰 몸집은 아니셨지만 ‘깡다구’가 얼마나 세셨는지 기억합니다. 단단한 팔뚝에 저희 삼형제가 매달려도 끄떡없이 버텼으니까요. 근데, 전 그렇게 힘이 센 우리 아버지가 끼니조차 변변히 챙겨 드시지 못했다는 건 몰랐습니다. 맞아요. 라면. 우리 삼형제가 그렇게 좋아하던 라면을 아버지는 거들떠보지 않으셨죠. 아직 철이 안 들었을 때에는 ‘라면을 싫어하시나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제대하고 나서 어머니한테서 그 이유를 들었어요. 아버지 젊을 때 돈 아끼려고 밥 대신 라면으로 삼시세끼를 때웠다면서요. 그때 질려서 라면 냄새만 맡아도 토할 뻔하셨다고요.

영화에는 덕수씨가 가족 뒷바라지를 위해 전쟁 중인 베트남에 가려는 장면이 있는데, 아내 영자씨가 울부짖어요. “왜 그렇게 평생 남을 위해서만 사세요? 왜 단 한순간도 당신의 삶에 당신은 없냐고요!”라면서요. 지금 제 마음이 영자씨와 똑같습니다.

아버지는 참 무뚝뚝하셨어요. 저에게 한 번도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지 않으셨잖아요. 어릴 땐 원망한 적도 있습니다. 100점짜리 시험지를 가져가도 아버지는 좀처럼 칭찬해 주지 않으셨어요. 전 아버지가 절 싫어하시는 줄 알았어요.

아버지, 근데 저는 아버지가 절 사랑한다는 걸 알았어요. 제가 국민학교 때 연탄가스 마셨던 것 기억나시죠? 아랫방에서 혼자 자다가 가스 마시고 죽을 뻔했잖아요. 날씨가 풀리면서 겨우내 얼어 있던 방바닥에 틈새가 생겼고 그 사이로 가스가 샜다면서요. 저는 그때 일 기억해요. 놀라셨죠? 몸은 축 늘어져 있었지만 이상하게 기억은 더 또렷합니다. 아버지가 내복 차림으로 절 둘러업고 후다닥 길거리로 뛰어가셨던 것도 기억나고요. 택시가 다니는 큰 길까지 업혀 있는데 아버지 등이 어찌나 넓고 뜨끈뜨끈하던지요. 병원으로 달려가는 택시 안에서도 아버지 심장이 쿵쾅쿵쾅 뛰더군요. 그때 알았어요. 아버지는 날 많이 사랑하는구나 하고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를 본 적이 있어요. 어머니가 예전에 자랑하듯 꺼내 보여주셨거든요. 그냥 편지가 아니었어요. 편지지 한쪽에 멋들어진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시도 함께 적혀 있었습니다. 어머니에게 평생 함께 고생해줘서 감사하다는 내용이었고요. 글도 시도 그림도 근사해서 놀랐습니다. 평생 배운 적 없을 텐데 말이에요. 끼와 재능이 있어도 먹고살기 바쁘니 알아차릴 겨를조차 없었겠죠. 생각해보니 아버지는 하모니카도 잘 불고 노래도 멋들어지게 잘하셨는데. 하지만 뭘 하고 뭘 먹고 싶은지, 뭐가 되고 싶은지조차 알지 못한 채 우리를 위해 모든 걸 바치며 살아왔겠죠. 가슴이 아픕니다. 아버지, 병 얻고 나서 제게 ‘시를 많이 읽고 싶다’고 하셨죠. 지금은 읽기 힘드실 테니 제가 꼭 읽어 드릴게요.

아버지, 효도하고 싶습니다. 저 결혼하고 아버지 모시고 여행 한 번 못 갔잖아요. 아버지 일어나시면 꼭 저랑 여행가요. 지금은 병상에서 계신 아버지에게 해드릴 수 있는 게 많지 않네요. 다만 앙상해진 아버지 손을 잡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외에. 아버지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상기 온라인뉴스부 차장 kitt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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