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인류 최고의 발명

프로 운동선수로 활약하고 있는 남성과 수컷 침팬지가 팔씨름을 하면 누가 이길까. 침팬지 수컷은 다 성장해도 키가 약 90㎝, 몸무게는 약 40㎏밖에 되지 않아 초등학교 저학년생의 체격만하다. 설마 사람이 질까 싶지만 100% 침팬지의 승리다. 침팬지를 비롯한 모든 영장류는 매우 강한 근육을 갖고 있어서 인간보다 힘이 2∼3배 세기 때문이다.

인간이 힘이 약한 것은 뇌를 위해 체력을 희생했기 때문이다. 고릴라의 뇌신경은 약 33억개, 침팬지는 28억개인데 비해 인간은 약 86억개의 뇌신경을 갖고 있다. 뇌신경의 수가 많을수록 뇌의 크기가 크며 에너지도 많이 사용해야 한다. 대개의 척추동물들은 섭취 열량의 약 2%만을 두뇌에서 사용하며, 영장류의 경우 총에너지의 9%를 소비한다. 그런데 인간의 뇌는 섭취하는 총에너지의 20%를 혼자서 소비해버린다. 힘도 약한 인간이 이처럼 낭비가 심한 뇌를 어떻게 먹여살릴 수 있었던 걸까.

해답 중 하나가 바로 1990년대에 리처드 랭엄 박사가 내놓은 ‘요리가설’이다. 인간의 뇌는 약 160만∼180만년 전에 급속히 커지기 시작했는데, 바로 그때부터 불을 이용해 고기와 덩이뿌리채소를 요리했기 때문이라는 게 이 가설의 요지다. 요리를 하면 음식물이 미리 소화되므로 위장이 칼로리를 보다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흡수할 수 있다. 실제로 날것 대신 익힌 음식을 먹일 경우 동물들도 보다 빠르고 크게 성장한다는 사실이 실험을 통해 증명됐다. 이로 인해 랭엄 박사는 “인류의 가장 중요하고 위대한 발명은 도구도, 언어도, 농경도, 문명도 아닌 요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고고학적 증거는 랭엄 박사와 매우 다른 시점을 가리키고 있다. 인류가 불을 사용한 가장 오래 전 흔적은 남아공의 한 동굴에 남아 있는 약 100만년 전의 재다. 또 이스라엘의 한 유적지에서는 약 80만년 전의 불 사용 흔적이 발견됐다. 그런데 최근 이스라엘에 위치한 타분 동굴의 유물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약 35만년 전부터 인간의 조상이 불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랭엄 교수는 한 군데에서 발견된 사실을 일반화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또한 이 연구 결과대로라면 지금까지 밝혀진 인류의 다른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기도 어려워진다. 그러나 최초 사용 시기야 어찌됐든 불이 인간에게 엄청난 이점을 제공했다는 점에 대해서만은 모든 과학자들이 인정하는 게 사실이다.

이성규(과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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