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협의회(WCC)가 한국교회에 동북아시아의 정의와 평화를 위한 역할을 요청했다. 지난해 부산에서 열린 10차 WCC 총회의 후속작업인 ‘정의와 평화의 순례’의 일환으로, 향후 세계 에큐메니컬 운동 속에서 한국교회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한 것으로 풀이된다.
스위스 제네바의 에큐메니컬센터에서 지난 5일 만난 WCC의 마크 비치 대변인은 “한국과 일본, 중국 사이에 여전히 남아 있는 지난날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에 한국교회가 나서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6월 19일 한국의 위안부 할머니가 이곳을 방문했던 일을 소개했다. 감리교인인 86세의 길원옥 할머니는 WCC 본부를 방문, 일제시대 때 겪었던 참혹한 일을 이야기하며 “우리 후손들은 평화의 나라, 안전한 세상에서 뼈아픈 일을 겪지 않길 바란다”고 증언했다.
비치 대변인은 “노년이 되어서도 어릴 적 겪은 그 일의 기억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할머니의 말씀에 마음이 아팠다”며 “그 상처를 치유하는 일은 미국교회나 유럽교회가 할 수 없고 한국교회와 일본교회, 중국교회가 함께 손잡고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길 할머니를 직접 마중했던 울라프 트베이트 WCC 총무는 “교회가 곤경에 처한 이들의 손을 잡고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도전에 어떻게 최선의 응답을 할 것인지 우리 자신에게 질문하자”고 말했다. 이어 지난달 2∼8일 열린 WCC 중앙위에서 ‘정의와 평화의 순례’를 세계교회에 제안했다.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라는 부산총회의 주제를 이어받아 그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자는 것이다.
트베이트 총무는 “부산총회에서 우리가 함께 드린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더 풍성한 삶을 향한 영적 여행, 즉 정의와 평화가 위협받는 곳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이끄신다는 것을 고백했다”며 “총회를 마친 뒤 허원구 부산총회 준비위원장과 대화를 하면서 이미 한국교회가 정의와 평화를 위해 다양한 대화와 협력의 장을 만들어 가고 있음을 알게 됐다”고 중앙위에서 설명했다. 전 세계 회원교회를 대표해 지난해 부산총회에서 선출된 150인으로 구성된 중앙위는 ‘정의와 평화의 순례’를 향후 에큐메니컬 운동의 공식 의제로 채택했다.
비치 대변인은 본보에 “동아시아 지역의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이 지역 교회들이 함께 나서는 것이 바로 정의와 평화의 순례가 될 것”이라며 “WCC는 매일 이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부산총회에서 우리가 목격한 전 세계 구석구석의 고통과 신음을 깊이 묵상하면서 WCC는 이제 교회가 정의와 평화를 회복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는 방향을 설정했다”며 “한국교회도 이러한 순례에 함께하면서 동아시아에서 화해의 사역자가 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WCC는 ‘정의와 평화의 순례’를 9개의 원으로 표현한 그림을 만들었다. 이 그림은 ‘각 교회의 상황에 따라 순례의 길을 정하기’ ‘정의와 평화의 이야기 목록 만들기’ ‘교회가 순례를 해야 하는 이유를 토론하기’ 등 9단계로 교회가 해야 할 일을 설명하고 있다.
WCC가 제안한 순례의 여정은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한 개인부터 지역 교회, 공동체, 국가와 대륙, 세계 등 다양한 차원의 협력과 동참을 제안하고 있다. 또 각 참여자들이 스스로 정의와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목적으로 할지 기도하며 함께 전진해 나가기를 요구한다.
비치 대변인은 “WCC가 강조하는 것은 교회가 스스로 자신들의 상황 속에서 정의와 평화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파트너들과 함께 변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며 “느리고 평범해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이 교회가 움직이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부산총회에 대해 비치 대변인은 “부산총회는 역대 최고의 총회였다”며 “아시아의 교회들을 포함해 다양한 교회들이 처한 상황 속에서 정의와 평화가 절박한 요구라는 점을 세계교회에 깨우쳐 주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WCC는 지난달 발간한 연례보고서에서 “순례는 정처 없는 방황이나 한가로운 소풍, 아침 산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생명을 향한 여정”이라는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의 부산총회 신앙강연 내용을 인용하면서 “부산에서 우리는 지역 교회와 성도 개개인부터 전 세계 인류공동체까지 함께 사랑의 하나님이 부르시는 초대에 응답해야 함을 깨달았다”고 평가했다.
WCC는 올해 한국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세계복음주의연맹(WEA) 총회가 취소된 데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WEA는 WCC와 함께 제네바 에큐메니컬센터에 본부를 두고 있다. 비치 대변인은 “한국교회가 분열된 상황에서 WEA가 총회를 개최할 수 없다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았다”면서 “한국교회가 중국·일본의 교회와 함께 동아시아에서 정의와 평화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내부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아 보인다”고 말했다.
제네바=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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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 “동북아 정의와 평화 위한 순례, 한국교회 나서달라”… 스위스 제네바 WCC 에큐메니컬센터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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