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세월호 특별법에 볼모 잡힌 여의도] 정치가 위기다

정치가 위기다. 세월호 특별법 합의 결렬로 여의도 정치는 ‘올스톱’이다. 국민들은 지난 4월 발생한 세월호 침몰 이후 드러난 국가 시스템의 난맥상을 보고 실망과 분노를 느꼈다. 그러나 이제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약속했던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서조차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는 정치의 무능에 더 크게 절망하고 있다. 지도부 합의를 파기하는 야당, 유가족의 외면을 받는 여당, 뒷짐 지고 있는 청와대. 그 모두가 국민의 눈에는 정상화 개혁이 필요한 ‘비정상’으로 비친다.

◇무너진 신뢰와 합의정신, 합의 깨는 야당=정치권이 세월호 특별법에 합의하지 못하는 것은 정치가 타협을 모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신뢰에 기반을 둔 타협이 아닌 ‘힘의 정치’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월호 특별법의 최대 핵심은 야당과 유가족이 특별검사 추천권을 쥐느냐 여부다. 특검 추천 방식은 여야 합의로 지난 6월부터 발효된 상설특검법에 조항이 있다. 그런데 이를 고쳐서 유리하게 해달라는 야당의 주장은 합리성을 결여하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야당과 유가족이 이토록 주장하는 것은 새누리당 등 여권이 추천하는 특검을 못 믿겠다는 뜻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11일 의원총회를 열어 지난 7일 여야 간 합의된 세월호 특별법의 재협상을 요구하면서 신뢰 없는 정치행태를 보여줬다. 협상 책임자인 박영선 원내대표는 비대위원장을 겸하는 사실상의 제1야당 대표다. 이런 합의사안을 의원들이 뒤집는 것은 스스로 리더십과 타협의 정신을 버리는 행동이란 비판이다. 당내 일각에서는 6·4지방선거와 7·30재보선을 앞두고 당에서 유가족들의 기대치를 너무 높여 놓았고, 선거 참패 후 올가미가 되고 말았다는 자조도 나온다. 새누리당은 12일 “신뢰가 깨지면 사회가 붕괴된다”고 공격했다.

◇정국 주도 못한 채 유가족 외면만 받는 여당=새누리당은 법체계 안정성 및 원칙을 내세우며 특검 추천권이나 진상조사위의 조사권·수사권 부여를 거부하고 있다. 연일 강공책이다. 그러나 여야 합의가 끝내 실패하고, 세월호 대치 정국이 계속된다면 거대 여당으로서 그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재보선 승리를 발판으로 협상에서 야당을 주도할지는 몰라도 정작 정국은 제대로 주도하지 못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과 여야 원내 지도부가 지난달 10일 청와대 회동을 통해 같은 달 16일까지 세월호 특별법을 처리하기로 했지만 여당은 끝내 야당과 유가족들을 상대로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특히 새누리당은 유가족들에게 불신을 받는다.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는 YTN라디오에 출연해 “(유가족들과) 직접 접촉을 안 하고 있다. 유가족들도 새누리당과는 접촉을 안 하려고 하는 것 같다”고 했다. 농성 중인 유가족을 노숙인에 비유하거나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에 빗대 공분을 사는 일도 있었다. 3선의 한 새누리당 의원은 “여당이 조금 더 협상력을 발휘해 유가족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려는 자세를 보이면 협상이 조금 원만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세월호 정국에서 사라진 청와대=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 19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눈물을 흘리며 세월호 참사에 대해 사과했다. 박 대통령은 또 같은 달 유가족과 청와대에서 만나 "무엇보다 진상규명에 유족 여러분의 여한이 없도록 하는 것, 거기에서부터 깊은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하지 않겠느냐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했었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특검 추천권이 없는 세월호 특별법을 결사반대하고 있다. 이날도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대로 된 특별법을 만들어 달라"고 촉구했다. 특검 추천권도 갖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여한이 없도록 하겠다"는 대통령의 말과 배치된다는 주장이다. 박 대통령이 전날 새정치연합이 세월호 특별법 협상안을 놓고 의총을 벌이는 와중에 "정치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지 자문해봐야 한다"며 야당을 작심 비판한 것이 적절했는지도 논란이다. 경제 활성화와 민생법안 처리를 독려하려는 뜻이지만 야당을 불필요하게 자극했다는 것이다.

새정치연합 박영선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새누리당이 집권여당답게 국회 운영이나 국정 운영을 책임져야 한다"며 "국민을 생각한다면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여권이 세월호 협상에 전향적으로 나서달라는 것이다.

◇자기 살길 바쁜 정치권, 법안 처리·국감은 뒷전으로=세월호 대치 국면이 장기화될 경우 각종 입법과 예산 처리 등은 차질을 빚게 된다. 새누리당 고위 관계자는 "경제 활성화 법안의 조속한 처리가 필요한데 세월호 특별법 문제 때문에 야당의 협력을 어떻게 끌어낼지 난감하다"고 우려했다. 그나마 올해부터는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예산안이 본회의에 자동 상정된다.

'알찬 국감'을 하겠다며 올해 처음 분리 실시하는 국감도 파행 가능성이 높다. 현행법에 따르면 국회는 오는 26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 1차 국감을 실시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이달 중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면 10월 1일부터 10일까지 열기로 한 2차 국감은 할 수 없다.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에 등 떠밀려 2차 국감을 하더라도 세월호 정국이 장기화된다면 내실 있는 국감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여야 정치인들의 '줄소환'이 이뤄지고 있는 사정 정국도 '정치 실종'을 가속화시킬 전망이다. 여야 모두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의원들에 대해 '방탄국회'를 열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검찰 수사가 탄력받을수록 정치권은 의정활동보다 몸사리기에 열중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엄기영 김경택 기자 eo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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