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이슈] 문창극 총리 후보자 발언 논란 ‘신학 논쟁’으로

"일본의 식민 지배와 남북 분단은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문창극(사진) 국무총리 후보자의 발언을 둘러싸고 논란이 거세다. 비기독교인들은 식민 지배와 분단에 면죄부를 주는 발언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그동안 한국교회의 신학적 고민과 소통이 부족했으며 이로 인해 개신교의 신앙과 신학이 세상 속에서 피상적으로 이해되고 있음을 방증하는 현상이다.

문 후보자의 발언이 근거를 두고 있는 ‘전통적 신정론’은 인간이 불의와 악을 통해 당하는 고난을, 하나님이 인간을 선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 훈육하는 과정으로 본다. 하지만 이를 피상적으로 단순하게 이해하면 인간의 자유의지와 도덕은 자리 잡을 곳이 없고 히틀러의 유태인 대학살 같은 반인륜적 범죄도 정당화되는 문제가 생긴다. 어디에 강조점을 두느냐에 따라 교계 내에서도 문 후보자의 발언에 대한 견해는 엇갈리고 있다.

문 후보자의 발언을 옹호하는 쪽은 ‘하나님이 강력한 주권의지를 갖고, 고난과 시련을 통해 역사 속 계획을 이루신다’고 해석한다. 고신대 이상규(역사신학) 교수는 19일 “문 후보자의 발언은 하나님이 직접 역사에 관여하며 역사를 하나님이 정한 목표로 이끌어 간다는 점을 잘 드러내고 있다”며 “일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은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sovereign will)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한국기독교학술원장 이종윤 목사도 “세상만사는 우연히 흘러가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모든 것이 이뤄진다”면서 “문 후보자의 발언은 기독교 신학의 입장에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반면 고신대 박영돈(조직신학) 교수는 “문 후보자의 발언은 교회가 전통적으로 신봉해온 하나님의 절대주권사상이 얼마나 피상적으로 이해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라며 “주권사상의 핵심은 하나님이 악과 불의의 세력을 주권적인 섭리로 제압해 선한 뜻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했다. 백석대 성기문(구약학) 교수도 “하나님이 교회를 넘어 창조와 역사 속에서도 활동하신다는 것은 기독교의 중요한 신학적 전제지만 ‘하나님의 관여’를 종파적 유익을 위해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양현혜(역사신학) 교수는 이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주최한 긴급신학토론회에서 “하나님의 공의는 약자의 자존을 세워주고 이들의 역사에 개입해 세상을 완성하는 것”이라며 “문 후보자의 발언에는 강자 중심적 사관이 깔려 있다”고 비판했다. 양 교수는 일본기독교단이 경술국치 당시 “한국인이 일한합병을 통해 특별한 국민으로 부활했으며 이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한 사실을 소개했다. 문 후보자의 발언은 전형적 식민사관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성공회대 김은규(구약신학) 교수도 같은 토론회에서 “출애굽이라는 말 자체가 이집트의 압제에서 벗어난다는 반제국주의 사상을 내포하고 있다”며 “일부 신권정치 이데올로기가 없지는 않지만 전반적으로 구약에는 반제국·역사비판·사회정의·평화사상이 스며들어 있는데 문 후보자는 이를 도외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문 후보자의 발언을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양측 모두 비기독교인들이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인간에게 강제적으로 고난과 악을 준다’는 견해를 반박했다. 새물결출판사 대표 김요한 목사는 “하나님은 고난을 허용하는 분이지, 고난을 창조하거나 제공하는 분이 아니며 모든 불행과 고난의 일차 제공자는 악 혹은 악인”이라고 말했다. 이상규 교수도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그들의 의지로 선악과를 따 먹는 악을 행하는 것을 알고 계셨지만 이를 허용하셨다”고 말했다.

장신대 김명용 총장은 “하나님은 인간의 이성이 다 포착할 수 없는 신비 속에서 그런 악의 세력들과 악에 동조하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허용하면서 악이 일시적으로 세상에서 활동하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나님은 악행이 벌어진 한복판에서 고통 받는 이의 옆에서 위로하시고, 그 책임을 대신 지신다”며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상규 교수는 “문 후보자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 이번 논란을 계기로 한국교회가 어떻게 올바른 역사관을 갖고, 선하신 하나님을 따르며 악에 대응할 것인지 고민하며 한 단계 성숙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사야 고세욱 기자 Isaia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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