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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이화련] 기분 좋은 추석

[시론―이화련] 기분 좋은 추석 기사의 사진

올 추석은 기분 좋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조짐이 그렇다. 미리 살 것과 나중 살 것이 따로 있어 시장을 몇 차례나 들락거려도 덜 피곤하고, 절인 배추 서너 포기를 들고 계단을 올라도 무거운 줄 모르겠다. 이대로라면 연휴 끝에 몸살도 안 나고, 서운한 마음으로 남편과 등 돌리고 잘 일도 없을 것 같다.

좋은 느낌은 생각지도 않은 밤(栗)에서 시작됐다. 문학상 공모 작품을 심사하러 하동에 갔다 밤을 선물 받았다. 특산품이라며 손에 들려주는데 제법 묵직했다. 껍질이 반들반들, 그야말로 토실토실한 알밤이었다. '추석이잖아요'하며 안겨준 그것이 심사료보다 더 흐뭇했다. 장보기 목록에서 기분 좋게 '밤'을 지웠다.

이산가족 상봉도 재개됐으니

분위기가 좋으려니 밤에 이어 사과와 배도 사야 할 품목에서 지우게 됐다. 추석 상에 올리라고, 아이들 내려오면 먹이라고, 친구와 동생이 한 소쿠리씩 가져왔다. 많이 산 김에 나눠 먹자며 건네준 그것들도 따지고 보면 길한 조짐이다. 작년에 못 온 과일이 올 추석에 왔으니 인심이 후해졌고, 인심은 곳간에서 난다 했으니 그만큼 그네들의 살림이 피어난다는 징조다. 또 올해 과일 농사가 잘 됐다는 뜻이기도 하니 역시 기쁜 일이다.

영 아닌 줄 알았던 북한도 이번엔 분위기 파악을 좀 했는가, 이산가족 상봉의 문을 다시 열었다. 덕분에 명절을 앞두고 감격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오랜 세월 남북으로 헤어져 생사를 모르던 혈육이 짧은 시간이나마 부둥켜 안고 안부를 확인했다.

북측은 이번 만남을 그들이 베푼 호의라며 생색을 냈다. 호의라 해도 좋고 선심이라 해도 괜찮으니 길을 또 막겠다고 변덕이나 부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내친김에 문을 활짝 열어 내년 추석쯤엔 이산가족들이 한자리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괜찮은 조짐은 또 있다. 아직 추석 장도 덜 봤는데 남편은 내게 파스를 붙이자는 둥 온천에 가자는 둥 살갑다. 걸핏하면 병이 도지는 아내의 어깨를 걱정해주는 말인데 꽤 달콤하게 들린다. 30여 년을 같이 살면서 좀처럼 맛보지 못한 배려다. 어쩌면 좋은 조짐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음식 장만하랴, 손님 대접하랴, 손에 물 마를 새 없이 동동거리다 앓는 소리를 하면 한번쯤 어깨를 주물러 주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그냥 파스로 때우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여간해서는 쓰다 달다 말이 없는 사람이 그렇게라도 표현을 하니 반갑다. 비록 설레발에 그치더라도 고마운 일이다. 이러다 머지않아 그가 송편을 함께 빚자고 소매를 걷어붙일 날이 오지 않을까.

고마운 이들 위해 송편도 빚고

추석에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 송편이다. 설날 떡국을 먹듯 추석엔 송편을 먹어야 한다. 이번에는 떡을 좀 넉넉히 빚으려 한다. 군대 갔던 둘째가 제대해 온 가족이 모이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고향에 가지 못하는 친구네 가족도 우리 집에 오기로 했다. 송편 좋아하는 둘째와 친구를 위해 모자라지 않게 준비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먹을 떡이니 정성을 듬뿍 담아 예쁘게 빚을 것이다. 봄에 뜯어 얼려 두었던 쑥을 녹이고 포도즙을 내어 고운 물을 들여야겠다. 변함없이 든든하게 곁을 지켜주는 가족과 친구에게 그렇게나마 고마운 마음을 전해야겠다.

송편 속으로는 뭐니뭐니해도 청대 풋콩이 제일이다. 살짝 삶아 떡에 넣으면 조곤조곤 씹히는 게 은근히 달다. 어릴 때 먹던 그 맛을 생각하며 풋콩 송편을 빚곤 했지만 늘 조금씩 아쉬웠다. 어느 해는 콩이 덜 여물어서, 어느 해는 너무 여물어 맛이 덜했다. 풋콩을 구하지 못해 묵은 콩을 불려 쓴 적도 있다. 올해는 콩을 직접 심었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것을 잎을 들춰가며 지켜봤다. 꼬투리가 차츰 도도록해지더니 때맞춰 보기 좋게 알이 찼다. 낌새로 보아 올 추석 송편은 특별히 맛있겠다.

이화련(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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