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시기 임시수도로 기능하며 국가를 떠받쳤던 부산의 ‘피란수도 유산’이 국가유산청의 ‘세계유산 우선등재목록’에 선정됐다. 지난해 보류 판정 이후 보완 작업을 거쳐 재도전에 성공한 것으로, 국내 근현대 유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절차에 본격 진입하는 첫 사례다.
부산시는 14일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피란유산)이 국가유산청 세계유산 우선등재목록으로 확정됐다”고 밝혔다. 피란유산은 2023년 국내 최초로 근대유산 분야 잠정목록에 올랐지만, 지난해 심의에서는 구성유산 재검토와 서사적 연계 부족,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 서술 미비 등을 이유로 보류됐다.
시는 1년 동안 연구용역·전문가 자문을 거쳐 부족한 부분을 보완했다. 특히 기존 9곳이던 구성유산 목록에 영도다리와 복병산배수지를 추가해 총 11곳으로 확대하고, 임시수도 시절 도시 구조·피란민 생활·국제사회의 지원 등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 유산 간 연계성을 강화했다. 보호·관리계획 역시 보다 구체화해 서류 완성도를 높였다.
현재 피란유산은 ▲경무대(임시수도 대통령 관저) ▲임시중앙청(동아대 석당박물관) ▲아미동 비석 피란주거지 ▲국립중앙관상대(부산기상관측소) ▲미국대사관 겸 미국공보원(부산근현대역사관 별관) ▲부산항 제1부두 ▲하야리아기지(부산시민공원) ▲유엔묘지(재한유엔기념공원) ▲우암동 소막 피란주거지 ▲영도다리(영도대교) ▲복병산배수지 등 11곳으로 구성돼 있다.
이준승 시 행정부시장은 13일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위원회 세계유산분과 회의에서 직접 발표(PT)를 맡아, 피란유산이 “전쟁이라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도 정부 기능을 유지한 도시이자, 국제사회와 연대해 평화를 지켜낸 상징적 공간”임을 강조했다.
위원회는 피란유산을 “20세기 중반 한국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국가 기능과 사회체계를 유지한 피란수도의 실체를 증명하는 유산”으로 재평가하고 우선등재목록으로 선정했다. 국내 잠정목록 14건 가운데 올해 우선등재목록으로 확정된 유산은 양주 회암사지유적과 부산 피란유산 두 건뿐이다.
부산시는 이번 결정을 계기로 내년부터 유네스코 예비평가(Preliminary Assessment)에 착수할 예정이다. 예비평가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진행하는 서면 평가로, 세계유산 등재신청서의 완성도와 가능성을 점검하는 중요한 절차다. 이후 등재신청후보 선정–등재신청대상 확정–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심사로 이어진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피란유산은 대한민국이 가장 어려운 시기를 버텨낸 공간이자 국제연대와 평화의 정신을 품은 유산”이라며 “오랜 준비 끝에 다시 기회를 얻은 만큼 시민과 함께 세계유산 등재를 반드시 성사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내년 7월 부산에서 열리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또한 이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윤일선 기자 news828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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