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대출 시장에서는 주택담보대출과 대기업대출은 늘어나고, 중소기업대출과 자영업자대출은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불경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가계부채 감축이라는 특명을 받은 금융 당국이 대출 총량제 등으로 은행권을 강하게 죄면서 여력이 있는 차주만 돈을 빌리는 양극화 시대가 도래하는 모습이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 등 예금 은행 19곳의 지난달 대출 잔액은 2523조1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3% 증가했다. 기업대출이 8조4000억원, 가계대출이 4조1000억원 늘었다. 기업대출을 세부 항목별로 쪼개 보면 대기업대출이 전년 동기 대비 6.5% 많은 3조8000억원 증가했다. 가계대출을 포함한 모든 세부 항목 중 증가율이 가장 크다. 이는 제조업(45.1%)과 건설업(5.5%) 덕분이다.
반면 중소기업대출(3조8000억원)은 전년 동기 대비 3.9% 느는 데 그쳐 증가율이 2018년 말 이후 처음으로 4% 선을 밑돌았다. 그나마도 생산적인 분야라고 보기 힘든 부동산업(25.9%)이 증가세를 이끌었다. 자영업자대출(7000억원)도 0.5% 늘어 증가율이 6개월째 1% 미만으로 저조했다.
대기업대출이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은 6·27 대출 규제와 9·7 대책 등 금융 당국이 최근 가계대출을 강하게 죈 여파로 풀이된다. 은행권이 가계대출 대신 기업대출 영업에 열중한 결과다. 여기에 지난달 지표 금리까지 하락하면서 시설·운영 자금을 저렴하게 확보하려는 기업의 움직임이 맞물린 것으로 보인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대기업은 언제든 돈을 빌릴 수 있어 금리 등 조건이 좋아질 때를 기다렸다가 대출을 받겠다고 나선 것”이라면서 “대기업 밑단에서는 상황이 다른데 특히 내수의 최일선에 있는 자영업자의 대출 수요가 적다. 요즘 경기가 나쁘다는 것이 체감될 정도”라고 말했다.
가계대출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보인다. 증가분 중 대부분을 주담대(3조9000억원)가 차지했다. 전년 동기 대비 4.5% 증가했다. 반면 신용대출 등은 3000억원 느는 데 그쳐 증가율이 마이너스(-) 0.6%를 기록했다. 개인 고객 중 집 살 여력이 있는 사람의 주담대만 늘 뿐 다른 대출은 수요가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신용 점수가 평균 700점대로 비교적 낮은 중저신용자에게 SGI서울보증의 100% 보증을 바탕으로 돈을 내주는 사잇돌대출도 증가세다. 핀테크 기업 핀다가 지난달 중개한 사잇돌대출은 전월 대비 20% 가까이 증가해 약정액 기준 올해 최대치를 기록했다.
금융 정책이 은행권 대출 양극화를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3단계 규제가 지난 7월 시행되면서 소득이 적은 차주는 사실상 돈을 빌리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금융 당국이 가계대출 축소 일변도의 정책을 내놓으면 은행 입장에서는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다”면서 “중소기업대출이나 중저신용자 등 여력이 없는 차주 대상 대출에 힘을 줄 유인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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