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오후 2시 방문한 마약예방치유단체 은구(NGU) 사무실은 얼핏 보기엔 분위기 좋은 카페처럼 보였다.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사무실은 어두운 색의 높은 천장 아래 은은한 노란색 전구 조명이 공간을 밝히고 있었고, 작은 로스팅 기계와 커피머신 사이로는 여유로운 공기가 흘렀다.
“저 커피머신이 2000만원짜리예요. 원래 카페였던 곳을 저희가 임대한 건데, 전 주인이 그냥 두고 갔죠.” 이희경 NGU 사무국장은 웃으며 말했다. “남경필 NGU 대표 아드님이 오는 10월에 출소해요. 최근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는데, 아마 이곳에서 직접 커피를 내리지 않을까 싶어요.”
사무실이라는 명칭과 달리 이곳을 채운 건 나무 테이블과 푹신한 노란색 소파들이었다. 열댓 명이 앉을 수 있는 큰 테이블과 소파를 빙 둘러 놓은 작은 테이블, 책장에는 성경책과 상담심리학 교재, ‘회복’에 대한 책들이 나란히 꽂혀 있었다. 잔잔한 찬송가가 흐르던 이곳은 마치 ‘회복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잠시 후 남 대표가 도착했다. 그는 이날 오전 방송사 녹화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전날에는 또 다른 방송사가 이곳을 찾아 촬영을 진행했다고 한다. 최근 그는 ‘남경필 이노마’라는 유튜브 채널까지 개설하며 바쁜 일정을 소화 중이다. 힘든 기색 하나 없이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께서 제 아들을 책임지신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제 하나님의 다른 아들과 딸들을 책임지려 합니다.”
남 대표는 큰아들이 마약을 하게 된 이유를 ‘결핍’이라고 설명했다. “중독은 어떤 형태로든 결핍에서 출발합니다. 가정폭력, 부모의 이혼, 외모에 대한 강박,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 왕따…. 그런 작은 상처들이 쌓이면 마음 안에 거대한 구멍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구멍을 술 도박 마약으로 메우려 하죠. 잠깐의 자극, 가짜 만족에 기대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들은 갈증만 더 키울 뿐입니다.”
남 대표는 2014년 경기도지사 당선 직후 부인과 이혼을 했다. 결혼 25년 만이었다. 두 아들은 이미 성인이었고, 부부 사이에 큰 불화도 없었다. 전 부인은 정치와 상관없는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했다. 두 아들이 먼저 “두 분 이혼하세요”라고 권할 정도였다.
그래서 남 대표는 이혼이 자녀에게 상처가 될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다 큰아들의 마약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후 평소에 알고 지내던 한 목사에게 연락이 왔다. 그는 남 대표에게 “아이들에게 사과를 해보세요. 부모의 이혼은 나이가 몇 살이든 하늘이 무너지는 경험입니다”라고 말했다.
남 대표는 곧장 교도소에 있는 아들을 찾아갔다. “아들아, 아빠가 엄마랑 이혼한 거 진짜 미안하다.” 잠시 침묵하던 아들은 “아빠, 미안하고 고마워요”라고 짧게 답했다. 둘째 아들에게도 찾아가 사과를 했다. 남 대표는 “둘이 짠 것도 아닌데 반응이 똑같았어요. 그 순간이 진심으로 용서를 받은 순간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후 아들과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회복됐다. 아들은 자신처럼 마약중독자들을 돕는 상담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아들이 그러더라고요. ‘전 마약을 해봤잖아요. 그러니까 더 잘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말 듣고 마음이 놓였어요. 이 아이가 드디어 자기의 상처를 다른 사람의 회복을 위해 쓰겠다고 하니까요.”
그는 아들이 성경을 다시 읽기 시작했고, 감옥 안에서 큐티(QT)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 변화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확신한다. “예전엔 아들한테 성경 좀 읽으라고 잔소리를 엄청했어요. 근데 지금은 아무 말 안 해요. 하나님이 ‘네 아들은 내가 책임진다’고 하셨거든요. 저는 그 말씀을 믿습니다.”
남 대표는 이제 마약 중독자를 범죄자가 아닌 ‘아픈 사람’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마약 치료의 해답은 단순한 금욕 훈련이 아니라 관계 회복이라고 강조했다. “진짜 만족은 사랑에서 옵니다. 특히 조건 없는 사랑. 예수님의 사랑이 그렇죠. 죄가 없으신 분이 죄인을 위해 채찍 맞고 십자가에 달리셨잖아요. 그 사랑을 알게 되면 마음이 다시 채워져요.”
남 대표는 신앙을 ‘빽’이라고 표현했다. 대통령 ‘빽’보다 더 강력한, 자신을 근본적으로 지탱해주는 존재로서의 믿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 믿음 덕분에 감정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순간도 견딜 수 있었다. “사실 가장 무서웠던 건 아들이 마약 하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어요. 실제로 한 번은 마약을 하던 아들이 응급실에 실려 갔어요. 그래서 결국 제가 아들을 직접 신고했습니다.”
신고를 결심한 순간 두려웠다고 했다. 그러나 마음 한켠에는 확신도 있었다. “하나님이 그랬어요. ‘걱정하지 마, 내가 다 책임질게.’ 그래서 신고할 수 있었어요. 하나님 ‘빽’ 믿고 다음 걸음을 딛게 된 거죠.” 그는 “절벽 위에서 뛰어내리면 죽을 것 같지만 그 밑에 뭔가 있다는 걸 진짜 뛰어내려보기 전엔 모른다”며 “믿음이란 끝을 모르는 상황 속에서도 한 발을 내디디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10~20대 마약 사범이 급증하는 현실 속에서 “이제 마약은 가정의 문제”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자녀의 마약 문제를 겪고 있는 부모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세요. 절대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마세요.”
최근 법 개정으로 마약 중독자 상담은 더 이상 ‘신고 대상’이 아니다. 과거에는 상담 중 마약 사용 정황이 확인되면 신고 의무가 있었지만, 지금은 치료가 우선이라는 원칙에 따라 상담만으로는 더 이상 신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즘은 상담한다고 해서 신고 안 합니다. 치료가 가능한 상태라면 신고할 의무가 없습니다. 마약을 거래하거나 유통한 경우가 아니라면요.”
따라서 마약 문제로 고민하는 가족이 있다면, 먼저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그는 거듭 강조했다. 그는 NGU나 마약퇴치운동본부와 같은 전문 기관에 연락해 상담을 시작해보길 권했다. “망설이지 말고 NGU로 연락 주세요. 상담만으로도 출구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는 구체적인 대안도 준비하고 있다. 경기도 인근에 국내 최초의 ‘마약 치유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다. 병원, 공동체 생활, 직업 교육까지 아우르는 삼위일체 시스템이다. “일본의 다르크(DARC) 모델을 참고했어요. 그런데 우리는 신앙이라는 무기가 있어요. NGU는 병원, 공동체, 직업 훈련 위에 하나님의 말씀을 얹을 겁니다. 마약 끊고 가장 중요한 건 사회 복귀예요. 다시 사람들과 어울리고, 일하고, 먹고 자고 사는 법을 배워야 하죠.” 현재 NGU는 지자체와 병원 등과의 협력을 추진 중이다.
아직 기획 단계지만, 이미 여러 기업인이 힘을 보태고 있다. NGU에 따르면 현재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 곽재선 KG그룹 회장, 이만득 삼천리그룹 회장, 홍정욱 올가니카 회장 등이다. 남 대표는 “100억 넘게 들어가는 프로젝트지만, 하나만 제대로 만들면 K-마약치유 모델로 전 세계에 퍼질 수 있다”고 했다.
남 대표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노래도 부르고, 매주 일요일 밤이면 생방송도 진행한다. NGU의 영어 뜻은 ‘Never Give Up’(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단체의 이름처럼, 단 한 사람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살아간다.
“옛날에 제가 정치를 할 때는 ‘국민 전체를 행복하게 해드리겠습니다’라는 공허한 주장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내 곁에 있는 딱 한 영혼이라도 구하자, 도와주자는 마음뿐입니다. 우리 사회가 마약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낙오된 자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서로 감싸주는 그런 사회가 됐으면 합니다.”
성남=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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