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레리나 박세은은 지난 2021년 아시아 출신으로는 처음 ‘발레의 종가’ 파리오페라발레(POB) 에투알(수석무용수)이 됐다. 그리고 2022년부터 동료 에투알들과 함께 함께 국내에서 갈라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7월 30일~8월 1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리는 세 번째 갈라 공연에는 박세은을 비롯해 마티외 가니오, 아망딘 알비송, 한나 오닐, 폴 마르크, 기욤 디오프, 블루엔 바티스토니 등 에투알 10명과 프리미에르 당쇠르(퍼스트 솔로이스트) 플로랑 멜라크가 출연한다. 8월 3일 대전 예술의전당에서도 POB 에투알 갈라가 펼쳐진다.
앞선 두 번의 갈라 공연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박세은이 캐스팅과 함께 프로그램 구성을 총괄했다. 루돌프 누레예프 재안무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전막 하이라이트를 비롯해 ‘호두까기 인형’ ‘파키타’ ‘실비아’ 등 클래식 레퍼토리부터 제롬 로빈스의 ‘인 더 나이트’, 모리스 베자르의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 웨인 맥그리거의 ‘크로마’ 등 모던 및 컨템포러리 발레까지 다채로운 춤이 A와 B 프로그램으로 나뉘어 선보인다. POB의 전통과 현대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작품이 골고루 포함됐다.
11명의 출연진 가운데 박세은, 마티외 가니오와 서면 인터뷰를 가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박세은
- 올해 갈라 공연의 출연자와 프로그램을 선정한 기준은 무엇인가?
“프로그램 선정은 단순히 두 번 반복되는 갈라가 아닌, 각 프로그램이 완전히 다른 메시지와 분위기를 전할 수 있도록 기획했습니다. A프로그램에서는 많은 사랑을 받는 ‘인 더 나이트’를 비롯해 클래식과 모던이 교차하는 작품들로 구성했습니다. 각 작품을 통해 무용수 개개인의 개성과 감성을 온전히 만끽하실 수 있도록 했습니다. B프로그램은 기존 틀을 깨고 색다른 시도를 더했습니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 전막 하이라이트 장면들을, 모든 무용수가 한 무대 위에서 함께 펼치는 방식을 연구하고 구현했습니다. 전통과 창의성이 함께 하는 새로운 형식의 무대를 선보이고자 합니다. 각 작품 간의 흐름과 감정이 공연 전체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정성을 다했습니다.
저도 이번처럼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건 처음이라, 개인적으로도 무척 큰 기대를 안고 있습니다. 해외의 많은 갈라에서는 보통 짧은 파드되 위주로 구성하는 경우가 많지만, 저는 2022년부터 파리오페라발레 에투알 갈라를 만들면서 제작사(에투알클래식) 대표께 꼭 중편 작품을 넣자고 했어요. 더 깊은 감정과 스토리를 전달할 수 있어서예요. ‘인더 나이트’ '잠자는 숲속의 미녀 하이라이트'처럼 단막극처럼 구성된 무대가 관객들에게 더 진한 인상을 남긴다고 믿어요. 무용수들도 단순히 기교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몸으로 풀어낼 수 있어 몰입하게 되고요.
2021년 에투알이 된 다음 서울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밝혔듯 “파리오페라발레 에투알갈라는 내가 꼭 보여주고 싶은 무대를 만들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에서 시작했어요. 그런데 매 시즌을 준비하면서 기획이 얼마나 치밀하고 세심해야 하는지 깨달았고, 무대 뒤에서의 역할도 예술의 중요한 일부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지금은 작품과 무용수, 스태프 간의 조화를 생각하면서 예술 전체를 바라보는 시야가 생긴 것 같아요.
출연자 선택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이 무용수가 이 작품에서 가장 빛날까?’였습니다. 저는 중편 중심의 레퍼토리를 고집하는데, 이는 무용수들이 더 깊은 감정과 이야기를 전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이번 갈라에서는 제롬 로빈스를 비롯한 거장들의 대표작과 국내에서 보기 드문 안무들을 포함해, 10인의 에투알 각자의 강점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도록 구성했습니다.”
- 이번 프로그램 가운데 제롬 로빈스의 ‘인 더 나이트’는 2022년에도 선보인 것이다. 당시 간담회에서 이 작품을 굉장히 좋아한다고 얘기했었는데, 이 작품의 매력은 무엇인가?
“저는 ‘인 더 나이트’의 서정성과 호흡 그리고 ‘절제된 사랑’을 그리는 섬세한 표현 방식에 깊이 끌립니다. 특히 제가 맡은 파드되에서 손끝·시선·발끝의 작은 터치로 감정을 조절하는 디테일이 중요한데요. 관객과 더욱 밀도 있는 교감을 이끌어내고자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 올해는 서울 공연횟수가 3번으로 지난해보다 1번 준 대신 대전에서 1번 한다. 지역에서 갈라공연을 하게 된 배경과 앞으로 다른 지역에서도 할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서울 외에 대전에서 공연하게 된 것은 지역 관객들에게도 세계 최고의 무대를 경험할 기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번처럼 지역 공연이 확대되는 흐름은 매우 의미 있다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여러 도시에서 선보이고 싶습니다. 8월 3일 대전 공연에서만 ‘라 바야데르’ 중 니키아의 죽음 독무를 연기하는데요. 지난해 서울에서 국립발레단의 ‘라 바야데르’ 전막 공연에 출연했는데, 그때 무용수로서 몰입해서 공연했고 관객 반응도 따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전막을 지역 관객들께도 보여드리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현실적으로 여건이 허락하지 않다 보니 서울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장면을 이번에 대전 무대에서 따로 선보이게 됐어요. 2023년 파리오페라발레 ‘지젤’ 내한공연이 대전에서 열렸을 때 (출산으로) 제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한 아쉬움을 이번 작품으로 조금이나마 푸셨으면 좋겠습니다.
- 2024-2025시즌 가장 좋았거나 의미 있었던 일은 무엇인가?
“가장 뜻깊었던 건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오로라에 출연한 것입니다. 오랫동안 준비해온 작품이었는데요. 5회 출연을 하면서 몸과 마음의 성장을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 다가올 2025–2026시즌에서 중요한 계획은 무엇인가?
“다음 시즌은 ‘지젤’로 시작하는데요. 클래식 레퍼토리에서 더 깊은 해석과 감정의 풍부함을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2026년 여름엔 POB 에투알들과 함께 세계 주요 발레단 수석무용수들이 함께하는 ‘우리 시대의 에투알 갈라’를 제작사와 기획 중입니다. POB 뿐만 아니라 세계 주요 발레단의 흐름을 보이는 무대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마티외 가니오
- 지난 3월 1일 ‘오네긴’을 끝으로 POB를 퇴단했다. 4개월 정도 지났는데, 퇴단 후의 소감이 궁금하다. 퇴단해서 좋은 점과 좋지 않은 점이 있다면?
“‘오네긴’를 마지막으로 POB를 떠난 지 몇 달 지났지만, 아직도 그 밤의 감정이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무용수로 긴 여정을 마무리했다는 점에서는 아쉬움과 함께 홀가분함도 느꼈습니다. 퇴단 이후 가장 큰 변화는 시간에 대한 감각입니다. 오랜 시간 철저하게 짜여진 스케줄 속에서 살아왔기에, 지금처럼 저만의 시간표를 만들어 나갈 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훈련과 리허설, 공연에서 오는 긴장감과 에너지의 밀도가 사라진 건 조금 낯설기도 합니다. 몸이 기억하는 리듬과 무대의 열기를 완전히 놓기는 어렵겠지만 그만큼 POB에서의 시간이 강한 각인으로 남아 있습니다.”
- POB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이나, 특별히 의미 있었던 순간은 무엇인가요?
“한 가지를 고르기 어렵지만, 에투알로 임명되던 날은 절대 잊지 못할 순간입니다. POB에서 함께한 수많은 예술가들과의 협업도 그 자체로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파트너, 리허설 디렉터, 안무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무용수로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예술가로 성장할 었습니다. POB는 높은 예술적 수준을 요구하는 동시에 다양한 문화권의 아티스트들과 소통할 무대입니다. 다양성과 깊이 있는 작업 방식이 저를 끊임없이 자극하고 성장시켜 주었습니다.”
- 아직 정년이 1년 남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소 이르게 퇴단하신 이유와 새롭게 준비 중인 프로젝트가 있다면요?
“일반적인 은퇴 연령보다 1년 먼저 무대를 떠나기로 했습니다. 이는 제 선택이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다시 춤을 추면서 발레단의 공연이 주로 위대한 클래식 레퍼토리거나 매우 현대적인 레퍼토리로 구성돼 있다는 점을 실감했는데요. 두 종류의 레퍼토리들은 제게 예술가로의 정체성을 되묻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클래식 레퍼토리에선 제 연기나 기량이 기대만큼 도달하지 못해 스스로 실망하기도 했고, 현대적인 레퍼토리에선 종종 세컨드 캐스트로 배정되면서 저만의 개성과 오랜 지식이 부각되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상태로 정년까지 기다리는 건 너무 길다고 생각했습니다. 계획과 시간표를 다시 세울 필요가 있다고 판단, 발레단에서 제공하는 1년간의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제가 원하는 분야를 선택할 수 있도록 기회를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의 삶과 무용을 위해 현재 발레단이 제공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받으며 무대 밖에서의 새로운 역량을 키우는 중입니다.
지금의 제 일상은 오페라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파리에서는 무대를 덜 서고, 해외에서는 더 자주 공연하게 되었죠. 여전히 매일 훈련하며 일정 수준의 기량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확실히 일정이 훨씬 유연해졌고, 저 스스로 계획을 짜서 더 개인적인 일들에 시간을 쓸 수 있게 되었어요. 특히 어린 두 자녀와 좀 더 깊이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이 크죠. 물론 여전히 예술적인 프로젝트와 목표는 갖고 있지만, 예전만큼 거창하진 않아요.
조금씩 연극에도 도전할 예정이고, 무용수로서 무대에 설 기회가 주어진다면 계속 공연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짧은 파드되를 선보이고 돌아오는 형태보다는, 더 장기적이고 예술적 맥락이 있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어요. 이제 시간이 좀 더 유연해진 만큼, 안무가들과 함께 작업하며 제 나이와 신체 조건에 맞는 작품들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 퇴단 이후 해외에서 많은 공연 초청을 받고 있을 것 같다. 이번 여름에는 한국과 일본에서 갈라 무대에 서는데, 갈라 공연과 전막 작품 중 어떤 쪽을 선호하나?
“전막 발레에선 한 인물을 천천히 만들어가며, 관객과 점차적으로 교감할 수 있고, 하나의 이야기 축을 따라가게 되죠. 마치 장거리 마라톤처럼, 감정선도 길게 끌어가고, 짧은 시간 안에 기량을 증명해 보여야 할 필요도 덜하죠. 반면 갈라는 또 다른 방식으로 흥미로운 작업이에요. 세계 각지에서 온 무용수들과 만나고, 다양한 스타일과 서로 다른 시각들을 마주하게 되니까요. 국제무대에서 나를 알리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죠. 이번 한국에서의 갈라는 그 점에서 조금 특별합니다. 우리는 모두 POB 출신이라 결속력도 있지만, 각자의 스타일과 움직임을 보여주게 되는데요. 아마도 관객들이 각 무용수가 가진 개성, POB의 다채로운 미학 등을 통해 프랑스 무용의 전반적인 풍경을 보다 풍부하게 감상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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