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땅 북한에 열린 교육의 ‘틈’… 연해주서 선교의 길을 찾는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연해주)에서 건설 노동자들을 관리하던 북한인 고위 관리자 A씨는 비인간적인 구조 속에 고뇌했다. 노동자 한명당 벌어들이는 수입의 80% 이상을 조선노동당에 상납해야 하는 상황에서 다친 노동자의 몫까지 채워 넣어야 하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그런 그에게 심스데반(63)·원로이스(59) 선교사 부부가 다가갔다. 2년간의 꾸준한 만남 속에서 그는 마음을 열었고, 부부의 집에서 북한말로 된 성경을 함께 읽었다. 그는 북한으로 돌아가기 전 복음의 씨앗을 품에 안았다.

북한 사람을 직접 만나 복음의 씨앗을 심는 이 같은 만남이 가능했던 건 연해주라는 공간이 품은 잠재력 때문이다. 최근 딸의 결혼식 참석차 귀국한 심 선교사 부부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 카페에서 “연해주는 이념의 경계를 넘어 ‘미리 온 통일’을 경험할 수 있는 땅”이라고 설명했다. 그들은 연해주에서 10년 간 쌓아온 경험을 통해 구한말 선교사들처럼 북한의 굳게 닫힌 문을 여는 새 길을 구상하고 있었다.

원 선교사는 “2016년 처음 답사를 위해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 내렸을 때, 벤치에 앉아 있는 북한 사람들을 보자마자 ‘이곳이구나’ 직감했다”고 말했다. 연해주 시내 곳곳에서는 남한 사업가와 북한 노동자, 옛 소련 땅에 흩어져 살다 돌아온 고려인, 중국에서 온 조선족이 러시아인들과 한데 얽혀 있었다. 그는 “이념과 체제를 넘어 한민족이라는 이름으로 공존하는 그곳에서 ‘미리 온 통일’을 보았다”며 “이 땅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임을 확신했다”고 말했다.


이 독특한 환경 속에서 부부는 북한 선교의 새로운 방향을 발견했다. 130여 년 전 서양 선교사들이 교육과 의료로 굳게 닫힌 조선의 문을 두드렸듯, 교육 등을 통해 닫힌 북한의 문을 여는 방식이었다.


부부의 역할은 북한 선교의 ‘틈’을 넓히고 구체화하는 것이었다. 같은 선교단체 소속 선교사의 소개로 P대와 연이 닿았고, 심 선교사는 러시아 영주권자 신분으로 정식 교직원이 됐다. 특히 코로나19로 평양의 대면 강의가 불가능해지자, 심 선교사는 해외 교수들과 북한 학생들을 잇는 온라인 강의의 기술적 체계를 만드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그는 “교수들의 강의 자료를 미리 전달해 번역하게 하고, 화상 수업의 시간과 방식을 조율하는 등 행정지원을 도맡았다”며 “제가 없었다면 비대면 국제 수업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에서 대규모 프로젝트를 총괄했던 엔지니어로서의 경험이 선교 현장에서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평양에 직접 들어가려던 이들의 계획은 코로나19로 좌절됐고, 온라인 사역마저 남북 관계 악화로 현재는 중단됐다고 한다.


심 선교사에게 북한은 청년 시절부터 품어온 ‘마음의 빚’이었다. 그는 “특별한 연고는 없지만, 80년대 청년 시절부터 늘 분단된 조국의 북쪽 땅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었다”며 “어떻게든 저들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고 말했다. 성공적인 사회생활과 사업을 거쳐 40대 중반, 인생의 전환점에서 그는 마침내 그 빚을 갚기로 결심했다.


2006년 헌신을 결단했지만, 하나님의 시간은 달랐다. 선교사로 파송받기까지 10년의 기다림과 훈련이 이어졌다. 헌신을 결단했을 때 50이 넘은 나이는 교단(예장 통합) 파송 규정의 벽에 부딪혔다. 포기할 수 없었던 부부는 먼저 해외개척선교회(GMP)의 문을 두드려 2016년 파송을 받았고, 연해주에 둥지를 튼 뒤 현지 사역을 증명해낸 2년 후에야 교단으로부터 정식 선교사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현재 부부는 연해주에 다음 시대를 위한 전초기지, ‘연해주 예수원 아둘람 공동체’를 직접 짓고 있다. 이곳은 향후 북한이 개혁개방 되었을 때 그 땅에 세워질 건강한 교회 공동체의 모델을 미리 만들어보는 실험의 장이기도다. 심 선교사는 “단순히 예배만 드리는 교회가 아니라, 함께 노동하고 삶을 나누며 자급자족하는 공동체의 원형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 비전의 뿌리는 강원도 태백 산골의 예수원에 닿아있다. 부부는 북한 선교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던 시기, 예수원에 들어가 생활하며 “노동이 기도이고, 기도가 노동”이라는 영성을 체득했다. 재정이 넉넉지 않아 직접 망치를 들고 집을 짓는 지금의 고된 노동 역시, 부부에게는 기도의 또 다른 모습이다. 공동체의 이름에 ‘예수원’을 넣은 것도 그 영성을 잇겠다는 다짐이다.

심 선교사는 “100년 전 선조들이 이곳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했듯, 우리는 다음세대를 위한 ‘영적 독립운동’의 길을 닦고 있다”면서 “한국교회가 이미 시작된 북한 내부의 변화에 주목하고, 새로운 방식의 선교를 위해 함께 마음을 모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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