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낳자마자 아버지와 이혼했다. 어머니의 이혼 후 그녀는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 물론 아버지로부터 양육비가 건네졌다는 말도 들어본 적이 없다. 어머니는 시장에서 날품을 팔며 홀로 그녀를 키웠다. 그래서 항상 궁핍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제법 큰 가게의 점원으로 취직했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사장은 그녀의 성실성과 정직성에 깊은 신뢰를 보내며 몇 개월마다 월급을 인상해 주었다. 그녀는 월급 대부분을 적금에 부으며 자린고비처럼 아끼고 아꼈다. 그렇게 돈을 모아 7년 만에 1억원을 모았다.
그때 보험사에서 자산관리사로 근무하고 있다는 고교 동창이 찾아왔다. 그 친구는 고급 옷을 입고 중형차를 타고 다니고 있었고 그녀에게 무척 친절했다. 친구는 그녀를 자신의 승용차에 태우고 시 외곽으로 나가서 맛있는 음식과 커피를 대접하곤 했다. 처음에는 친구의 호의가 부담스러웠으나, 친구가 보험사에서 돈을 많이 번다고 하니 별다른 의심 없이 함께 다녔다. 그렇게 둘은 친한 사이가 되었다.
1년쯤 지난 어느 날, 친구가 호들갑스럽게 그녀를 찾아왔다. 친구가 다니는 보험사에서 이율이 높은 적금 상품이 나왔는데, 곧 마감되니 서둘러서 가입하라고 강권한다. 월 70만원씩 불입하면 매월 2% 상당의 이자가 발생하는 상품인데, 840만원을 일시에 납입해도 된다고. 자기 계좌로 입금해주면 잘 관리해서 매달 이자를 주고 만기에 원금을 주겠다고. 그녀는 믿고 있던 친구의 권유를 거절할 수 없어서 얼떨결에 840만원을 입금했다.
친구는 이후에도 계속 그녀를 승용차에 태우고 시 외곽으로 나가 밥을 샀고, 매월 2%의 이자를 지급했다. 연이율에 상당한 돈을 월 이자로 받게 되니 그녀의 경계심은 무너졌다. 친구는 계속해서 비슷한 상품을 소개하면서 가입하라고 부추겼고, 그녀는 별다른 의심 없이 친구의 계좌로 돈을 입금했다. 그렇게 몇 달 만에 그녀는 몇 년 동안 저축해서 모은 1억원을 모두 친구의 계좌로 보냈다.
한동안 매월 이자로 200만원 가까운 돈이 들어왔다. 그녀가 결혼을 앞두고 친구에게 원금을 달라고 요구하기 전까지는. 그녀는 가게에서 함께 일하다 만난 연인과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가끔 친구와 함께 만나기도 해서 친구도 곧 결혼하리라는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친구에게 신혼집 전세보증금에 보태려고 하니 원금을 빼달라고 수차례 요청했다. 그러나 곧 빼줄 것처럼 이야기하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잠적했다. 친구에게 돈을 받을 수 없게 된 그녀는 원하던 것보다 적은 신혼집으로 들어가야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친구는 잠적한 기간에 구속되어 있었다. 친구가 그녀를 찾아왔을 때는 이미 다른 20여 명의 피해자로부터 원금 독촉을 받고 있었다. 친구는 그녀에게 받은 돈을 피해자들에게 조금씩 나눠서 지급하는 식으로 ‘돌려막기’를 했지만, 그녀에게 더 이상 나올 돈이 없어지게 되자 결국 손을 들고 말았다. 이렇게 친구의 사기 행각으로 인해 아끼고 아끼며 1억원을 모았던 그녀의 7년 세월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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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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