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일 저녁 해가 지고 어스름이 내려앉자 경기도 포천 국립수목원 인근 광림세미나하우스에는 숲 냄새를 머금은 산바람이 스며들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시간 사람의 형체만 겨우 분간되는 숲길 사이로 불빛이 하나둘 밝혀졌다. 그 불빛의 발원지는 바로 ‘2025 영성형성아카데미’가 열리고 있는 광림세미나하우스였다.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감독회장 김정석 목사)가 지난 7일부터 10일까지 주최하는 이번 아카데미는 목회자와 평신도, 교단을 아우르는 다양한 이들이 참석한 가운데 깊은 침묵과 경청, 성찰의 여정을 걷고 있다. 참석자들은 첫날 저녁, 각각 배정된 장소에서 ‘경청모임’을 시작으로 아카데미의 문을 열었다.
경청모임은 말 그대로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다. 십자가 모양의 나무막대를 들고 입을 연 이들은 부모의 병환, 이혼, 유산 등 고통의 순간들과 그 속에서의 신앙적 경험을 조심스럽게 풀어놓았다. 이에 다른 이들은 침묵과 눈빛, 눈물, 미소 등 말 없는 언어로 응답했다.
김춘자(81) 장로는 “경청모임은 내가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라며 “아무 말 없이 해답 없이 들어주는 이 공동체 안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위로와 치유를 경험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침묵과 경청 속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느꼈고, 그간 내가 붙잡고 있던 자기중심적 생각들이 무너졌다”고 덧붙였다.

이 경청모임에는 단 두 가지의 중요한 규칙이 있다. 발언자 외에는 말을 하지 않으며 여기서 나온 이야기는 결코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 것. 이는 발언자가 안심하고 내면을 열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한 장치다. 전승영 담당 목사는 “경청모임은 성령의 음성을 서로의 고백을 통해 듣는 거룩한 과정”이라며 “참가자들이 신뢰 속에서 마음의 상처를 고백할 수 있도록 이 규칙만큼은 꼭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아카데미는 단순한 수련회가 아니다. 침묵을 통해 하나님의 응답을 듣는 ‘영성 훈련’의 공간이다. 하루 일정은 강사의 강의, 침묵의 묵상, 공동체 나눔, 그리고 소그룹 경청모임의 순환 구조로 이뤄진다.
강의 후에는 모든 참가자가 각자의 공간으로 흩어져 사색에 잠긴다. 이후 이어지는 나눔 시간에는 침묵 속에서 들은 하나님의 응답들이 간증의 형태로 흘러나온다.

미래교육목회연구소 소장 송대선 목사는 “묵상 중에 벌레 먹은 나뭇잎 하나를 보았다. 그런데 그 구멍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너무나 아름다웠다”며 “인생의 상처와 흔적도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전했다.
조재일 서울 맑음교회 목사도 “개척교회를 목회하면서 낙심하고 원망하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 주변의 가장 작은 자에게 베푸는 사랑이 곧 목회’라는 응답을 주셨다”고 고백했다.
영성형성아카데미는 1983년 미국 연합감리교회 어퍼룸(Upper Room)이 현대인의 신앙 성숙을 위해 시작한 프로그램이다. 기감은 이를 도입해 운영하다 2년 전 교단 총회의 정식 인준을 받고 지난해부터는 ‘한국영성형성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독자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순례자의 광야, 순례자의 노래’를 주제로 열렸다.
기감 교육국 총무 김두범 목사는 “이곳에서의 순례가 믿음의 선배들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는 시간이 되길 소망한다”고 전했다.
포천=글·사진 박윤서 기자 pyun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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