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이 30년 이상 해묵은 논쟁인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석·박사 과정 신설 가능성을 재타진하고 있다. 이른바 ‘한예종 설치법’은 1992년 한예종 개교 이래 국회에서 수없이 입법을 시도했지만 다른 예술대학 역차별 논란에 부딪혀 관철된 바 없다. 다만 이재명 대통령이 문화산업 강국 실현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대대적인 투자를 공언한 만큼 22대 국회에서 한예종 석·박사 과정 신설을 골자로 한 한예종 설치법을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8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전날 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상임위원장·간사 간 관저 만찬에서 김교흥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은 “한예종 석·박사 과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이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김 위원장은 “대한민국이 10대 경제 강국의 지위를 지속하려면 문화·예술이 중요하다”며 “K-컬처 부흥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예종을 해외에서 유학하러 찾아오는 세계적인 대학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이 대통령이 “왜 한예종에 석·박사 과정이 없느냐”며 관심을 표하자 김 위원장은 “국내 다른 대학의 반대가 심한데, 윈윈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답했다.
한예종은 고등교육법상 대학이 아니라 규정상 ‘각종학교’로 분류돼 대학원 설립과 석·박사 학위 수여가 불가능하다. 한예종을 졸업하면 학사 학위는 인정받지만 정식 대학원 과정은 없다. 석사 학위에 상응하는 학력인 한예종 ‘예술전문사’ 과정이 있지만 정식 학위로는 인정받지 못한다. 국내 최고 예술학교로 평가받는 한예종을 나와도 교수가 되려면 다른 학교에 다시 들어가거나 해외 유학을 떠나야 해 예술 인재 유출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한예종의 주장이다.
한예종은 1999년과 2006년에도 석·박사 과정 설치를 추진했으나 전국예술대학교교수연합 등 여러 단체 반발에 부딪혀 백기를 들었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의원 시절인 지난 17대 국회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설치령(대통령령)으로 운영 중인 학교의 명칭을 ‘한국예술학교’로 변경하고 문화관광부 장관이 관할하는 고등교육기관으로 두는 내용의 한예종 설치법을 발의했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이후 21대 국회에서 이채익·박정·김윤덕 의원 등 여야를 가리지 않고 동일한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지만 상임위 문턱을 넘기도 힘들었다. 22대 국회 들어서는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11일 ‘한예종에는 단과대학에 해당하는 각 원 및 소속 학과를 두고, 석사 학위 과정 및 박사 학위 과정 운영을 위한 대학원을 두는’ 내용을 골자로 한 한예종 설치법을 발의한 상태다.
21대 국회 당시 문화체육관광위 소속 수석전문위원은 검토 보고서를 통해 “한예종은 기술 혁신 기반 문화 콘텐츠 인력 양성 및 창작 기반 연구·개발(R&D)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한 첨단 분야의 심화를 위해 대학원의 설립이 절실하다”며 타당한 입법이라고 의견을 냈다. 다만 “제정안 입법 시 문화체육관광부의 재정적 지원과 교육부의 고등교육법 미적용 등 다른 예술대학에 비해 교육 과정 운영 등의 특혜를 받게 돼 역차별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도 명시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수석보좌관 회의에 관련한 보고가 올라온 적이 있다”며 “다른 예술대학에서 총궐기해 반대하면 (입법이)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혜원 기자 ki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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