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북한보다 시설이 더 못합네다.”
형광등 불빛 아래 창문 하나 없는 교실. 점심시간이 지나고도 교실에 맴도는 밥 냄새. 학교에 첫발을 내디딘 탈북 학생의 한마디에 국어 교사 권순란 선생님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학생도 입학하지 않으려나….’ 학교에 왔다가 시설을 보고 발길을 돌리는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학교는 지하에 있었다. 2004년, 경기도 남양주의 어두운 지하 창고를 개조해 개교한 탈북민 대안학교는 2008년, 또 한 번 임대아파트 상가 지하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재학생이 늘어 가고, 배움을 향한 탈북 학생들의 열정도 식지 않았지만, 햇빛 한 줄기 들지 않는 환경은 20여년간 그대로였다.
줄곧 땅속에 있던 학교는 지난달 19일, 마침내 지상으로 올라왔다. 지난해 교감이 된 권 선생님은 새 교사(校舍) 앞에서 햇볕을 쬐며 이렇게 말했다. 드디어 우리 학생들이 학교다운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됐다고, 입학하러 왔다가 시설 때문에 발길을 돌리는 탈북 학생들은 이젠 없을 것 같다고.
8일 찾은 경기도 의정부 한꿈학교 새 건물에서 가장 돋보인 건 출입문보다 큰 원형 통창이었다. 당초 유치원이었던 건물을 리모델링할 때부터 학교 측은 “창문을 많이 또 크게 만들어 달라” 요청했다고. 학교엔 출입문도 투명 유리로 설치돼 있었다. 1층에 들어선 식당엔 창문 4개가 나란히 들어섰고, 2~3층의 교실은 형광등을 모두 꺼도 햇볕으로 환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꿈학교 지상 이전은 교직원들에게 꿈 같은 얘기였다. 한데 1년 전, 한 후원자가 “학교 이전에 써달라”며 50만원을 기부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교직원들도 십시일반 지상 이전 기금을 모아 희망을 키웠고, 이 소식이 후원 교회에 알려지면서 교회와 기업들도 후원에 동참했다. 예견치 못한 손길이 이어지면서 학교엔 목표 모금액에 2배 넘는 보증금이 모였다.
이 감격스러운 여정을 나누고자 교직원과 학생들은 이날 오후 학교에서 ‘지상 이전 감사예배’를 드렸다. 예배에선 새문안교회 북한선교부 백석준 목사가 ‘새로운 시작, 새로운 희망’(사 43:18~21)을 주제로 말씀을 전했다. 그는 “하나님은 주님의 선한 계획을 신뢰하는 이들에게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시는 분”이라며 “새 보금자리에 선 한꿈학교가 통일 세대를 일으키는 공동체로 더 크게 쓰임 받길 축복한다”고 말했다.
감사예배는 한꿈학교 김영미 교장과 후원자들이 학교 비전을 곱씹는 순서로 마무리됐다. 김 교장은 “탈북 학생들에게 교육은 대한민국 일원으로 자립할 역량을 기르는 시간이자, 북한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통일 한국의 가교가 될 인재로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탈북 학생은 미래 통일을 준비하는 통일유학생”이라며 학생들에 대한 관심과 기도를 요청했다.
의정부=이현성 기자 sag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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