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돌아올 이웃” 쇠창살 너머 놓은 희망의 징검다리

10여년째, 김종익(60) 구세군 제원영문(교회) 사관의 발걸음은 세상의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한다. 한때 동물병원을 운영하면서 교회 평신도로 교정사역을 돕던 그는 5년 전 ‘가장 험한 곳으로 가라’는 말씀에 순종해 구세군 특무사관으로 중범죄자들이 모인 공주교도소로 향했다. 그의 사역은 종종 “왜 굳이 흉악한 죄를 지은 이들을 위해 그토록 공을 들이는가?”라는 질문과 마주한다.

김 사관은 지난 7일 충남 공주교도소 예배 후 인근 한 교회에서 국민일보와 만나 “이들 대부분이 언젠가 우리 곁으로 돌아올 이웃”이라며 “한 사람의 변화가 우리 사회를 더 안전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그의 철학을 전했다. 김 사관은 이날 바로 몇 시간 전 진행된 교도소 예배의 풍경과 그 안에서 피어나는 변화의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그의 증언을 통해 쇠창살 너머의 풍경을 재구성했다.



김 사관이 들려준 그날 예배의 풍경 속에는 눈길을 끄는 인물이 있었다. 20년째 무기징역수로 복역 중인 이강현(53·가명)씨다. 김 사관은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학대받으며 자란 상처가 결국 범죄로 이어졌다”며 그를 품었다. 칠흑 같던 절망 속에서 이씨는 교도소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났고, 그의 삶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회에선 건반 한 번 제대로 만져본 적 없던 그가 ‘소망 찬양대’의 반주를 맡게 된 것은 신앙이 가져다준 기적 같은 변화였다. 먼저 있던 반주자가 출소하자, 그는 교재를 구해 홀로 건반을 익혔고, 이제는 7명으로 구성된 찬양대방의 방장이자 매일 새벽 동료들을 깨워 함께 예배를 드리는 인도자가 됐다. 그에게 건반을 누르는 행위는 단순한 연주를 넘어, 매일 자신의 죄를 돌아보고 속죄하는 기도와도 같다.


이씨는 “최근 폭행 전과로 동생마저 구속돼 마음고생 하는 어머니와, 과거 내 행동으로 상처받았을 피해자를 위해 속죄하는 마음으로 기도한다”고 말했다. 물론 이 깨달음은 하루아침에 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과거에는 피해자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부족한 사람이었다”며 “목회자들과 꾸준한 만남을 통해 비로소 내 죄를 직면하고, 피해자의 고통을 헤아리며 뉘우치는 마음을 갖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사회로 나갈 기약이 없는 그에게 ‘담장 안에서의 사역’은 새로운 소명이 됐다. 수년 뒤 찾아올지 모를 가석방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필리핀이나 캄보디아에서 선교사로 헌신하고 싶다는 꿈도 생겼다. 그는 “자격이 없는 저에게 한 목사님께서 ‘나가면 함께 사역하자. 이곳에서의 시간을 그걸 위해 준비하는 시간으로 쓰라’고 격려해주셨다”며 희망을 이야기했다. 그는 김 사관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깥 사람들은 교도소를 혐오의 대상, 무자비한 이들만 가득한 곳으로 생각하는데, 그런 편견에도 이곳에 오셔서 주의 사랑으로 거듭나게 해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마음을 전했다.


김 사관이 들려준 그날 예배의 풍경은 통제된 분위기와 신앙을 향한 열정이 교차하는 현장이었다. 교도관들의 감시 아래 대화 한마디 없이 조용히 앉아있던 150여명의 재소자들은, 찬양이 시작되자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거나, 박수를 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설교 말씀 사이에는 곳곳에서 “아멘!”이라는 외침이 나왔다.


출소까지 6년이 남은 박진우(44·가명)씨 역시 ‘소망 찬양대’의 일원으로 함께 사역하고 있다. 그의 마음은 사회 복귀에 대한 희망과 함께 ‘전과자’라는 낙인, 생계에 대한 막막함 등 두려움이 공존한다. 박씨는 “‘마음은 하나님께, 손길은 이웃에게’라는 구세군 슬로건처럼, 진실한 삶을 사는 것으로 세상의 편견을 이겨내고 싶다”며 신앙을 통해 두려움을 넘어설 용기를 얻고 있다고 했다.

이날 예배에는 60~70대 어르신들로 구성된 ‘하늘빛오카리나 연주단’도 함께했다. 김 사관은 “때로 음정과 박자가 흔들렸지만, 열정이 담긴 연주에 재소자들이 박수를 보냈다”고 전했다. 설교에 나선 행복한 교회 김경례 목사의 간증은 재소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김 목사는 자신도 모르게 보이스피싱 범죄의 ‘전달책’이 되어 실형을 살았던 아들의 경험을 자세히 나눴다. 그는 “아들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무지 역시 죄의 일부임을 깨닫고 죗값을 치르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며 “우리 삶에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닥칠 때가 있지만, 그 안에서조차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포기하지 말자고 아들과 함께 기도했다”고 전했다.


김 사관의 사역 철학은 ‘필요를 채우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날도 예배를 마친 뒤 150여명의 재소자들 손에는 빵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그는 “예수님을 전할 때 빵과 함께 주라는 말씀처럼, 마음을 나누기 전 빵 하나가 먼저 복음의 문이 되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교도소가 통제된 공간이지만, 오히려 복음을 전하기엔 가장 좋은 ‘준비된 선교지’라고 말한다. 그는 “바깥 세상에선 복음을 전할 기회조차 만들기 어렵지만, 담장 안에선 재소자들이 자발적으로 예배를 선택하기에 오히려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 좋은 밭”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시와 음악 등 ‘문화 코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재소자들의 닫힌 마음을 연다. 그는 “재소자들에게 익숙한 대중가요나, 그들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오래된 노래를 함께 부를 때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는 것을 느낀다”며 문화 사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 길은 외롭다. 눈에 보이는 성과나 재정적 보답이 없기에, 교인 수 증가와 교회 성장을 우선시하는 교계의 전반적인 분위기 속에서 교정 사역은 늘 뒷전으로 밀려나기 쉽다. 아내 윤명옥(60) 사모는 “남편에게 ‘교인들이 무서워하니 교도소 얘기 좀 그만하라’고 말할 때도 있다”며 사역자들이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구세군 내부에서도 잦은 정근(근무지 이동) 제도로 인해 한 곳에서 깊은 관계를 맺고 장기적인 사역을 펼치기는 힘든 구조적 한계가 있다.


하지만 김 사관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가 동역하는 ‘공주교도소기독교선교회’는 40년간 지역의 가장 어렵고 작은 교회들이 발벗고 나서 지켜온 연합체다. 선교회에는 부여 신현장로교회 유기종(회장) 목사, 공주 새소망우리교회 서성철(부회장) 목사, 공주 행복한교회 김경래 목사, 공주 할렐루야교회 백송학 목사, 공주 경신장로교회 김종구 목사, 논산 생명샘교회 강태휘 목사 등이 힘께하고 있다. 그는 “재소자 대부분이 ‘하나님을 조금 더 일찍 만났더라면 이곳에 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후회한다”며 “이들의 후회가 자기혐오로 끝나지 않도록 돕는 것이 우리 모두의 몫”이라고 말했다.

세상의 편견과 무관심 속에서도 이들 부부와 작은 교회들은 묵묵히 쇠창살 너머로 희망의 징검다리를 놓고 있다. 윤 사모는 “교도소에 올 때마다 늘 저 사람과 나의 차이는 과연 뭘까 생각한다”며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았고, 안 받았고의 차이일 뿐 우리는 모두 죄에 노출된 연약한 존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역은 재소자뿐 아니라, 신음하는 그들의 가족, 그리고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교도관들까지 아우르는 것이어야 한다”고 비전을 제시했다.

공주=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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