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K뮤지컬이 K팝처럼 세계적으로 쓰이는 용어는 아닙니다. 다만 브로드웨이에서 ‘어쩌면 해피엔딩’에 대해 한국에서 왔다거나 한국 원작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작품에 출연 중인 미국 배우들도 한국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K뮤지컬이라고 정의해도 되지 않을까요?”
지난해 11월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으로 한국인으로는 처음 미국 공연계 최고 권위의 토니상을 받은 박천휴 작가가 24일 서울 중구 명동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했다. 박 작가는 국내에서 이 작품을 K뮤지컬의 쾌거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그는 “이 작품의 미국 공연을 준비할 때 만난 프로듀서 중에는 한국 배경을 바꾸길 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 계약을 거절하고 원작을 지킬 수 있는 프로듀서를 찾았다. 내가 작품을 바꾸기 싫다고 고집부릴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한국 관객들이었다”면서 “이 작품이 한국에서 관객의 공감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통할 거라고 믿었다. 실제로 미국 관객들도 (한국 관객들과) 같은 포인트에서 웃고 울었다”고 전했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근미래 서울과 제주도를 배경으로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헬퍼봇 올리버와 클레어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박 작가는 이 작품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해 “당시 오래 사귀던 사람과 헤어졌고, 친한 친구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에 록밴드 ‘블러’ 보컬인 데이먼 알반의 솔로곡 ‘에브리데이 로봇’(Everyday Robots)을 듣다가 영감을 받았다”면서 “이별의 상실감을 로봇으로 써보면 어떨까 싶었다”고 말했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한국에서 2016년 초연됐지만 미국에서 별도로 개발이 진행돼 지난해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랐다. 미국 프로덕션은 초연 직후엔 큰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입소문을 타며 흥행에 성공한 것은 물론이고 평단까지 사로잡았다. 그리고 제78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작품상, 극본상, 음악상, 무대 디자인상, 연출상, 남우주연상 등 주요 부문을 휩쓸며 최다 수상작이 됐다. 박 작가는 작곡가 윌 애런슨과 공동으로 극본상과 음악상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수상을 기대했는지 묻자 그는 “기대했다가 안 되면 실망감이 크기 때문에 윌도 그렇고 나도 기대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어쩌면 해피엔딩’에서 사랑의 아픔이 두려워 사랑에 빠지지 않으려는 (여주인공) 클레어 같은 성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막상 수상했을 때는 정신이 없었다. 기쁘면서도 당황스러웠다. 집에 돌아와서 트로피를 식탁에 올려두었는데, 그걸 보며 내가 밥을 먹는 게 신기했다. 트로피의 무게감만큼 앞으로 더 열심히 하는 창작자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피력했다. 또 “뮤지컬 제작은 오랜 시간에 걸쳐 행성들이 제자리를 찾아 정렬되듯 많은 행운과 노력이 합쳐져야 기회가 온다. 늦은 나이에 뉴욕으로 건너간 이민자로서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 순간을 견디다 보니 한국인 극작가로서 처음으로 큰 기회도 얻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날 박 작가는 인터넷에서 밈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화제가 됐던 “(작품과 달리) 나는 싱글입니다”라는 수상 소감의 뒷이야기도 전했다. 그는 “나와 윌이 커플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윌은 결혼해서 잘살고 있고, 나는 싱글이다 보니 시상식에서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파장이 커질 줄 몰랐다”고 웃었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토니상 수상을 계기로 국내 공연계에서는 초기 창작부터 디벨로핑, 해외 진출 등 뮤지컬 생태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특히 ‘어쩌면 해피엔딩’이 우란문화재단의 창작 지원 프로그램에 힘입어 개발된 것과 관련해 창작자 육성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박 작가는 “한국을 떠나면 ‘우리나라가 꽤 좋은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처럼, 한국의 창작 지원 제도도 좋은 편이다. 다만 한국은 뮤지컬의 역사가 짧다 보니 창작자에 대한 정산이나 로열티 같은 보상은 부족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 애틀란타에서 ‘어쩌면 해피엔딩’의 트라이아웃 공연을 하면서 당시 지역 연계 프로그램에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한국도 지방 도시의 공연장에서 창작자들이 작품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지원했으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그는 ‘어쩌면 해피엔딩’에 이어 그동안 국내에서 선보였던 ‘일 테노레’와 ‘고스트 베이커리’도 미국에서 공연하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일 테노레’의 경우 1930년대 일제 강점기 경성을 배경으로 24명이나 나오는 대형 작품이다. 그는 “‘일 테노레’를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하는 것이 허황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19세기 태국을 배경으로 하는) 뮤지컬 ‘왕과 나’도 있지 않나. 이 작품은 브로드웨이에서 동양인 배우라면 출연하길 꿈꾸는 작품이다. ‘일 테노레’를 링컨센터에 올려서 21세기 ‘왕과 나’처럼 만드는 게 죽기 전 하고 싶은 일 중 하나”라고 피력했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오는 10월 10주년 기념 공연에 나선다. 박 작가는 “대본과 음악이 바뀌는 일은 없다. 브로드웨이에서 미국 버전이 호응 얻었다고 굳이 한국 버전을 바꾸고 싶지 않다. 우리의 감수성을 지키면서 다시 한국 분들을 뵙게 되는 것이 설렌다”고 기대를 드러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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