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로 공인된 313년 밀라노 칙령 이후, 교회는 단지 종교적 상징을 넘어 제도와 문화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중세에는 고딕 대성당이 도시의 심장부를 차지하며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경외와 연결을 표현하는 건축물이 되었습니다. 종교개혁 이후에는 말씀 중심, 공동체 중심의 공간으로 성격이 전환되었으며, 산업혁명 이후에는 도시화와 노동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복지와 교육의 거점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근현대에 들어서는 다양한 세대와 관심사를 품을 수 있는 유연한 공간으로 계속 진화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단지 교인들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긴밀히 연결된 열린 커뮤니티로 거듭나야 할 시점에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공동체의 회복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면서, 교회는 그 회복을 위한 거점으로써 존재의 의미를 새롭게 정립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교회는 내부 공동체를 위한 다채로운 프로그램 공간을 확보하는 동시에, 외부 커뮤니티와 상생할 수 있는 공유의 플랫폼으로 공간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커뮤니티 공간 구성 요소 및 설계 시 고려 사항
지역사회와 관계를 맺기 위한 공간은 단지 열려 있는 장소로 보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들어오고, 머물고, 다른 이들과 공유하게 되는지를 건축적으로 설계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가장 먼저 고려할 수 있는 것은 보행자 눈높이에서의 개방감입니다. 편안한 위치에 배치된 출입구, 외부에서 내부가 보이는 투명한 입면, 단차 없이 연결되는 바닥 동선은 모두 지역 주민이 공간을 쉽게 인식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 요소입니다.
또한 공간 구성의 유연성이 중요합니다. 특정 시간에는 강의실로, 또 다른 시간에는 모임실이나 돌봄 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가변 벽체나 이동형 가구, 일시적인 분리 공간 같은 장치를 활용하는 설계 전략이 유효합니다. 기능의 병치가 아닌, 프로그램 간의 전환이 용이한 평면 구성은 커뮤니티 공간의 활용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책임감 없고 쓸모없는 다용도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과 행위를 공간 시뮬레이션을 통하여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머물고 서로를 인식하며 상호작용할 수 있는 포용적 공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작은 마루 공간, 공유 주방, 통유리 커튼월 너머의 활동 등이 사용자 간의 연결을 유도할 수 있으며, 시선과 동선이 유기적으로 교차되는 구조가 효과적으로 작동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간은 지역이 필요로 하는 기능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이는 교회가 일방적으로 공간을 제공하는 방식이 아니라, 설계 단계에서부터 지역 주민이나 활동가, 운영 주체들과 함께 협의하며 기획한다면 더 좋은 공간 솔루션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건축은 결국 장소를 매개로 한 관계의 공간적 형식이며, 그 관계의 시작을 디자인하는 작업입니다.
다양한 커뮤니티 공간
야외에 있는 이 커뮤니티 공간은 안푸로드(Anfu Road)라는 중국 상하이에 있는 거리 위에 ‘Urban Bloom’의 이름을 가진 도시 공간 실험 구조물입니다. 이 구조물은 특별한 기능이나 복잡한 인프라를 전제로 설계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유롭게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고, 설계자는 그 안에 ‘기쁨’이라는 감정을 담고자 했습니다.
이곳은 주거 단지와 사무실, 레스토랑, 상점, 학교가 혼합된 거리로, 상하이에서도 독특한 규모와 구성이 돋보이는 지역입니다. 그러나 이 지역에는 공원이 없었습니다. 이런 삭막한 거리 위에 설계된 구조물인 Urban Bloom은 재활용된 재료를 사용해 지속가능한 디자인으로 설계되었습니다. 재활용 가능한 목재 팔레트를 재가공하여 부드러운 높낮이를 형성한 그 위에 다양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모여 소규모 강연, 소통 등 다양한 모임을 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습니다.
호주 시드니 외곽 도시인 파라마타에 문을 연 ‘PHIVE(피이브)’는 지역 주민들을 위한 새로운 커뮤니티 공간입니다. 이 건물 안에는 도서관, 워크숍 공간, 전시실, 회의실, 공연장, 시청 업무 공간까지 다양한 시설이 함께 들어서 있습니다. 보기에는 시청 건물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는 열린 공공 공간입니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건물 외부에서 내부 활동이 자연스럽게 보인다는 점입니다. 유리로 된 입면과 층마다 드러난 실내 공간 덕분에, 건물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길을 지나가는 사람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외부와 내부 사이의 거리가 멀게 느껴지지 않도록 시각적인 장벽을 줄인 것입니다.
건물의 1층은 거의 전부를 커다란 로비와 광장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로비는 마치 길처럼 열려 있어서 누구든지 가볍게 들어올 수 있고, 때로는 머무를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별도로 정해진 동선이 없어서, 목적 없이 둘러보거나 지나가기도 편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어디로 가도 막히지 않는 공간’을 만들어 놓으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드나들고 머물게 됩니다.
건물 중앙에는 큰 통로처럼 뚫린 공간이 있어서 위층과 아래층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엘리베이터나 계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오르내리면서 다른 공간들을 둘러볼 수 있도록 열린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설계하면, 단순히 이동만 하는 게 아니라 공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도서관이라고 해서 조용하고 닫힌 공간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PHIVE의 도서관은 아이들을 위한 독서 공간, 커뮤니티 키친, 청소년 스튜디오와 연결되어 있고, 사람들이 마주치고 머무를 수 있도록 다양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서로 다른 공간들이 벽 없이 이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공간 간의 경계를 흐리게 하면, 활동도 다양해지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교류하게 됩니다.
이 사례는 교회 건축에서도 많은 아이디어를 줄 수 있습니다. 동네 사람들에게 열린 공간, 여러 활동이 유연하게 연결되는 구조, 밖에서도 안이 보이는 친근한 분위기는 교회가 지역사회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들입니다. PHIVE처럼 교회도 ‘들어가기 쉬운 장소’,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공간을 새롭게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베이뷰-헌터스 포인트(Bayview–Hunters Point) 지역에 있는 Southeast Community Center at 1550 Evans는 지역사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설계된 커뮤니티 허브입니다. 이 센터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공간을 통해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센터는 3층 규모의 메인 건물과 독립된 이벤트 공간인 Alex Pitcher Jr. Pavilion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메인 건물의 1층에는 로비, 카페, 저렴한 보육 시설이 있으며, 2층에는 워크숍, 회의, 수업, 특별 행사를 위한 다목적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3층은 지역 비영리 단체들을 위한 사무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Alex Pitcher Jr. Pavilion은 앰피시어터, 프로젝터, 상업용 주방을 갖춘 주요 이벤트 공간으로, 다양한 커뮤니티 행사가 이곳에서 개최됩니다.
외부 공간은 주민들이 다양한 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조성되었습니다. 야외 앰피시어터, 스포츠 잔디밭, 어린이 놀이터, 바비큐 피트, 대형 그네 벤치 등이 마련되어 있어, 가족 단위의 방문객들도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센터는 LEED 골드 인증을 받은 친환경 건축물로, 지속 가능한 설계와 지역사회 참여를 강조합니다. 건물의 외관은 지역 주민들과의 협의를 통해 디자인되었으며, 내부에는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 문화적 가치를 더합니다.
이러한 설계와 운영 방식은 교회 건축에도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강화하고, 다양한 프로그램과 공간을 통해 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은 교회가 지역사회와 더욱 긴밀하게 연결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정리=
전병선 선임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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