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출신의 천재 피아니스트가 열 손가락을 걸고 벌이는 진실게임을 애잔한 시선으로 풀어낸 김태현의 장편소설 ‘안세찰’(교보문고 퍼블)이 출간됐다.
소설은 주인공 안세찰이 사채업자에게서 빌린 십억 원의 도박 빚을 탕감받기 위해 진실게임에 응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정체를 숨긴 사채업자는 안세찰을 사기도박에 끌어들여 일억 원짜리 차용증 열 장을 쓰게 한다. 이후 안세찰이 십억 원의 도박 빚을 갚지 못하자 진실게임을 제안한다.
진실게임은 총 열 개의 질문으로 구성돼 있다. 룰은 단순하다. 질문 한 개당 일억 원짜리 차용증 한 장씩 걸려 있다. 안세찰은 진실을 대답한 질문의 개수만큼 차용증을 가져갈 수 있다. 만일 거짓을 대답한다면 피아니스트에게 생명과 같은 손가락을 잘리게 된다.
거짓말탐지기를 이용한 진실게임엔 안세찰과 그의 여동생(안새봄)과 애인(차선영), 스승(이상화) 그리고 친구(정의선)가 참가한다. 안세찰은 네 사람 앞에서 자신의 치부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질문들을 받는다.
갈수록 잔인해지는 질문들은 네 사람의 회상과 감정을 씨줄과 날줄 삼아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북한에서의 비참한 꽃제비 생활을 시작으로 탈북, 중국에서 겪은 고난, 한국으로 밀입국한 사건, 피아니스트로 성공하려는 열망과 좌절, 사기도박에 걸려들어 거금의 빚을 지게 된 사연, 성폭행당한 애인의 임신과 낙태 등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삶이 펼쳐진다.
안세찰의 애인인 차선영은 몸서리치며 이렇게 절규한다. ‘이건 진실게임이 아니라 추악한 고해성사입니다. 신부님 앞에서 고해성사하면 구원을 얻지만, 사채업자 앞에서 고해성사하면 돈을 얻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이렇게 여동생 앞에서, 애인 앞에서, 스승 앞에서 감추고 싶은 자신의 비밀을 밝히려 할까요? 돈의 힘은 정말 대단합니다. 아무도 모르게 저질렀던 죄를 만천하에 드러내게 할 수 있으니까요. 하나님만 할 수 있었던 일을 이젠 돈도 할 수 있는 세상이 됐군요.’
주인공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세상을 세차게 살아가라는 의미를 담아 ‘세찰’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하지만 천재 피아니스트인 안세찰은 세상을 세차게 살아가지 못한다. 북한에서는 무능한 사회주의 벽에 막혀, 한국에서는 사악한 자본주의의 벽에 막혀 자신의 꿈을 잃어간다. 이 작품은 험한 세상에서 몸부림치는 한 탈북 청년의 이야기인 동시에 현시대를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자 김태현은 중앙 일간지 기자로 재직 중이며 작품으로는 단편소설 ‘하트 앤 애로우’, 침대와 욕조’, 중편소설 ‘13월의 사람들’, ‘전부 아니면 무’, 장편소설 ‘난희’ 등이 있다.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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