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탕집 버려지기 전, 쇠목줄 묶인 마당개 찾아온 기적 [개st하우스]

“백구 ‘메리’는 이웃집 노인이 도로변에 묶어 키우던 불쌍한 시골개였어요. 짧은 쇠목줄에 묶여 노인이 주는 음식쓰레기를 먹었는데 갈빗대가 드러날 만큼 야위었고요. 그 와중에 중성화도 되지 않아 지난겨울에 새끼를 6마리나 낳았어요. 어르신이 성가시다며 보신탕집에 갖다 버린다는 걸 겨우 막았어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메리와 꼬물이들의 겨울나기 과정을 SNS에 올렸는데, 그게 대박이 났어요.”

지난해 12월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진돗개 영상은 조회수 230만회를 넘기며 큰 화제가 됐습니다. 영상에는 갓 태어난 백구 6마리가 아장아장 걷다가 한적한 시골길을 내달리는 3개월의 성장 과정이 생생히 담겨 있었습니다. 댓글창에는 “너무 귀여워 심장이 아프다” “추위를 이겨내고 자라는 모습이 뭉클하다” 등등 200개 넘는 응원글이 달렸습니다. 2개월 뒤에는 후기도 공개됐습니다. 아기 백구 6남매가 모두 좋은 가정으로 입양갔고 어미개는 보호소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동화같은 훈훈한 결말이죠. 하지만 메리네 가족의 해피엔딩에는 감춰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방치된 마당개들의 문제입니다. 어미 백구 메리는 방치된 채 마당에 묶인 ‘평범한’ 시골개들 중 한마리였습니다. 그런 마당개들 대부분은 결국 보신탕집이나 공공보호소로 옮겨져 폐기처분과 다를 바 없는 최후를 맞이합니다. SNS에서 주목받지 못했다면 백구네 가족이 맞게 됐을 운명이죠. 그러니까 시골개 메리네 가족이 살아난 건 기적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위기의 백구들을 도운 건 이웃 주민이었던 혜린씨였습니다. 혜린씨는 지난해 충북 단양군으로 찾아온 귀농 청년인데요. 어미개 메리와 6남매를 돌보며 소식을 알린 주인공입니다. 혜린씨가 견주를 대신해 깨끗한 물과 사료를 주고 월동 준비를 도운 덕에 메리네 식구는 혹독한 겨우내 무럭무럭 자라 견생 2막을 열 수 있었습니다.

메리의 구조를 도운 동물단체 유엄빠 박민희 대표는 “방치된 시골개를 구조해달라는 온라인 제보가 매달 수백, 수천 통 쏟아지지만 이후 보호소를 찾아와 구조된 동물을 위해 책임을 다하는 제보자는 한두 명뿐”이라며 “혜린씨는 그야말로 구조 요청의 정석”이라고 전했습니다. 시골 마당개 메리의 위태로운 견생 그리고 귀농청년이 열어준 견생 2막까지 지난 9개월의 사연을 소개합니다.


이야기는 충북 단양의 작은 산골 마을에서 시작됩니다. 제보자 혜린씨는 주중에는 수도권에서 직장을 다니고, 주말에는 충북 단양군에서 시골 민박을 운영하는 이른바 ‘5도2촌’ 청년인데요. 지난해 여름 한창 공사 중인 펜션에 웰시코기처럼 다리가 짧은 백구 한 마리가 찾아왔답니다. 주인공 메리의 등장입니다.

메리는 이웃집 노인이 키우는 마당개였습니다. 평소에는 목줄에 묶여 있지만 노인이 가끔 목줄을 풀면 꼬리를 흔들며 동네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가 혜린씨네를 찾아온 거였죠. 또래 한 명 없는 시골에서 내심 쓸쓸했던 혜린씨에게 메리는 친구 같은 존재였습니다.

1m 쇠목줄에 묶여 노인이 주는 짬밥을 먹는 메리의 일상. 그것은 국내에 100만 마리쯤 있는 걸로 추정되는 실외견(시골 마당개)의 삶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혜린씨는 방치된 메리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견주의 허락을 구해 직접 사료를 사다 먹이고, 무거운 쇠목줄을 풀고 산책도 시켰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유난히 춥고 길었던 지난겨울 메리와 혜린씨의 일상에 큰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어느 날 메리가 이상한 행동을 보였습니다. 앞발에 피가 나도록 얼어붙은 땅을 깊게 파헤친 겁니다. 며칠 뒤 메리를 다시 찾아간 혜린씨는 깜짝 놀랐습니다. 메리가 구덩이 안에서 6마리나 되는 새끼를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견주의 무관심으로 중성화 수술을 받지 못했던 메리가 출산을 한 것이었죠. 하필 그날은 영하 15도에 대설특보까지 내렸답니다. 출산이 임박한 어미개는 새끼들을 추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엉성한 개집을 버리고 맨땅을 파헤친 겁니다.

견주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모견 하나도 성가신 마당에 새끼가 6마리나 더 생겼으니까요. 혜린씨는 “견주는 잘 돌보기는커녕 백구들을 보신탕집에 팔거나 시보호소로 보내려고 했다”고 털어놓습니다. 다행히 견주는 백구들을 팔 만한 가게를 쉽게 찾지 못했습니다. 2027년 개식용종식법 시행을 앞두고 인근 개 도살장과 보신탕집 대부분이 폐업하거나 폐업을 준비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혜린씨는 견주를 대신해 메리와 6남매에게 입양처를 찾아주기로 결심했습니다. 견주에게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볼테니 몇 개월만 참아달라”며 매달렸습니다. 우선 개집에 겨울용 이불을 깔아주는 등 월동 준비부터 했습니다. 그러고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수개월에 걸친 퍼피들의 성장 과정을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에 공개했는데요.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 퍼피들의 일상 영상이 누적 조회수 400만회가 넘는 대박이 난 겁니다. 그중 무사히 어미 젖을 떼고 힘차게 시골길을 달리는 6마리 퍼피의 모습은 조회수 230만회를 넘기는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습니다.


영상의 흥행에 힘입어 간절했던 입양길도 열렸습니다. 영상을 통해 수십 건의 퍼피 입양 문의가 들어왔고, 지난달 6마리의 퍼피들은 모두 가정 입양에 성공했습니다. 혜린씨에게는 퍼피들이 실내 생활에 잘 적응했다는 소식이 하나둘 전해졌습니다.


퍼피들을 전부 입양 보낸 뒤에도 혜린씨는 웃을 수 없었습니다. 여전히 어미개 메리는 1m 쇠목줄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혜린씨는 “내심 어미개 메리에게도 입양길이 열리지 않을까 기대가 컸지만 조회수가 400만회에 이르는 동안 한 건의 입양 문의도 없었다”며 아쉬워했습니다.

그러던 중 메리에게도 희망이 생겼는데요. 한 동물단체가 메리의 중성화 수술을 지원하고, 입양자가 나타날 때까지 돌봐주기로 한 겁니다. 동물단체에는 방치된 시골개를 구조해달라는 제보가 매달 수천 건씩 접수되지만 대부분 거절됩니다. 메리의 구조 요청이 받아들여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메리를 구조한 동물구조단체 유엄빠 박민희 대표는 “혜린씨는 방치견들을 돌보는 데에서 나아가 견주로부터 소유권 포기 의사를 확인하고 입양 홍보까지 나섰다”면서 “아무런 책임을 분담하지 않는 다른 제보자들과는 달리 구조 요청의 정석과도 같았다”고 평가합니다.

혜린씨의 노력 덕분에 어미개 메리는 지난 3월 구조돼 유엄빠의 입양센터에서 건강을 회복하고 입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난달 11일, 개st하우스는 경기도 시흥의 유엄빠 입양센터를 찾아갔습니다. 이중 펜스로 둘러친 센터 내부로 들어가자 농구장 넓이의 애견 운동장이 나타났습니다. 40마리의 중·대형견이 뛰놀 만큼 넓은 공간이지만 이날은 주인공 메리의 독무대입니다. 곧 있을 특별한 만남을 준비한 건데요.

잠시 뒤 제보자 혜린씨가 입양센터에 도착했습니다. 메리가 구조된 지 2개월 만의 재회입니다. 혜린씨가 온 줄도 모르고 메리는 동물단체 활동가에게 재롱을 부리며 간식을 받아먹고 있었습니다. 혜린씨가 메리에게 허락되기를 바라던 평범하고 평화로운 일상입니다. 먼발치에서 지켜보던 혜린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메리야, 메리야” 불렀는데요. 목소리를 기억하는 건지 메리는 물고 있던 간식을 툭 떨어뜨리더니 혜린씨 품으로 달려갔습니다.


방치견 시절 갈빗대가 앙상했던 배에는 토실토실 살이 올라왔고, 쇠목줄에 눌려있던 목덜미에는 부드러운 솜털이 돋아났더군요. 얼굴을 핥으며 반기는 메리를 쓰다듬으며 혜린씨는 “전보다 건강하고 밝아진 것 같아 기쁘다”며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습니다.

쇠목줄을 벗고 견생 2막을 기다리는 1살 백구 메리의 입양자를 모집합니다. 희망하는 분은 기사 하단의 입양 신청서를 작성해주세요.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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