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년 목회 인생에서 이런 부활절은 처음이었다.
부활절마다 어려운 지역주민들에게 끼니를 전했던 경북 안동 임하교회 남두섭 목사는 지난달부터 식사 지원을 받으며 마을회관에 살고 있다. 지난달 25일 교회 사택이 산불로 전소되면서다. 산림청에 따르면 안동 산불 잠정 피해면적은 2만6709㏊. 축구장 3만7400개와 맞먹는 규모다.
“공동생활이 조금 불편하긴 해요. 양말 한 켤레 못 챙기고 마을회관에 왔으니까요. 눈앞에서 사택이 불타고 있는데 물 한 번 못 뿌리고 나왔어요. 이번 사순절엔 주님의 고난을 더 묵상하게 됐네요. 이재민의 어려움을 직접 느낄 수 있어서, 지역주민들과 고통을 나눌 수 있어서 그래도 기쁜 부활절입니다.”

남 목사가 임시 거처인 안동 임하리마을회관을 나서며 말했다. 남색 양복 차림의 그는 “화마가 교회 사택을 휩쓴 날 입었던 딱 한 벌 남은 정장”이라며 “오늘 예배를 위해 깨끗하게 세탁했다”고 했다. 남 목사는 안동시기독교총연합회 수석부회장이다. 20일 안동시부활절연합예배에선 사회를 맡았다.
남 목사가 사회를 맡은 이날 부활절 연합예배도 산불의 영향을 피해갈 순 없었다. 당초 예약됐던 경북 안동실내체육관은 이재민 대피소로 비워주고 연합예배 장소는 안동탈춤공연장으로 조정됐다.

안동시기독교총연합회(안기총·회장 임정순 목사)가 이날 오후 3시에 연 부활절연합예배엔 지역 교인 1500여명(주최 측 추산)이 참석했다. 임하교회처럼 지난달 교육관 사택 등에 산불 피해를 입은 안동 지역 교회 10여곳도 예배에 참석했다.
이날 연합예배에 참석한 김삼철 금곡교회 목사는 “지난달 산불로 교회 교육관과 식당, 화장실이 전소됐고, 강풍으로 교회 지붕이 날아갔다. 마치 폭격을 맞은 듯한 마을에선 전소된 집들이 바람에 무너져 내리고 있다”면서도 “고난 속에서 드리는 부활절 예배가 더 큰 희망의 의미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폐허 속에서 맞은 부활절이지만, 고난이 오히려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 것”이라며 “이번 시련을 통해 더욱 굳건한 믿음으로 주님을 기다리는 교회로 거듭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이날 ‘부활의 능력’(고전 15:50~58)을 주제로 설교한 정성진 거룩한빛광성교회 은퇴목사는 “부활이 있기 때문에 기독교는 죽음의 종교가 아니라, 살리는 종교로 이어져 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예수 그리스도는 황폐해진 것을 다시 일으키고, 죽음의 권세 아래 있는 삶 가운데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며 “산불로 잃은 게 많지만, 부활의 소망으로 다시 일어서자”고 격려했다.
이날 모인 부활절 헌금은 산불 피해 주민들을 위해 안동시에 전액 후원된다. 안기총 회장인 임정순 목사는 “고난을 이기고 승리하신 예수님처럼 피해 지역 주민들도 하루빨리 어려움을 극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가 평안을 누리길 소망한다”며 “안동 교계가 이번 산불 재난을 딛고 지역에 희망을 전하길 기도한다”고 했다.
안동=이현성 기자 sag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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