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마다 백지 위에 삶이라는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다. 무엇을 그릴지는 본인의 선택에 달렸다. 그렇게 완성된 그림들은 각기 다채롭다. 여기 아름다운 인생 풍경을 담기 위해 새벽부터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으로 향하는 이들이 있다. 축소 사회의 영향으로 시들어가는 농어촌교회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아내는 곳은 바로 다도움컴퍼니(대표 최충만 목사)다.
24일 4시간을 달려 도착한 경북 영덕군 한 식당. 이곳에서 다도움컴퍼니 대표인 최충만(38) 목사를 만났다. 이날 어르신을 뵈러 온 또 다른 손길은 최 목사의 동기인 전민호(36)씨. 전씨는 촬영을 돕기 위해 휴가를 반납했다고 한다.
본격적인 동행취재에 앞서 프로젝트에 관해 최 목사가 설명했다. 이들이 펼치고 있는 프로젝트의 제목은 ‘인생화원’. 말 그대로 인생 꽃을 담아낸 동산이란 의미다. 이들이 직접 고령층의 어르신들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남긴다. 편집을 거쳐 만들어진 신앙의 이력은 디지털 아카이브 속에 녹아든다. 보물 같은 이야기를 다음세대가 볼 수 있도록 남기기 위해서다. 인생화원의 대상은 단순 교회에만 그치지 않고 그 지역 주민까지 확대할 수 있다.
최 목사는 “2023년 울진군기독교연합회에서 시골 마을이랑 연합하는 사업 프로젝트 공모를 주최하면서 해당 사업을 준비했다”며 “당시 다른 지역에 산불이 발생하면서 공모 사업은 중단됐지만, 예장통합 포항노회 국내선교부 도움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교회가 예배만 드리는 공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역사를 담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소멸위험 지역이 다음세대의 발길이 끊겨 사라진다 하더라도 신앙의 이력이나 그 지역의 역사는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다도움컴퍼니는 첫 프로젝트 촬영지로 소멸 고위험군 중 하나인 영덕군을 꼽았다.
오늘의 촬영지…달산면 대지리 달산교회

오후 2시 노란 꽃망울을 터트린 개나리 꽃길을 지나자 초록색 새싹이 고개를 내민 밭들이 펼쳐졌다. 차량에 오르고 20분가량 흘렀을까. 낮은 지붕 사이로 붉은빛을 띠는 건물과 십자가가 나타난다. 이날 촬영지 달산면 대지리 달산교회(김은옥 목사)다.
촬영팀이 차량에서 내렸는데 인생화원의 촬영 주인공 중 한 명인 김은옥(56) 목사가 미리 마중을 나와 있었다. 반갑다며 환한 웃음과 함께 인사를 건넸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겠습니다. 지역 어디에서 오신 거예요?”(김 목사) “저는 여수, 민호는 청주에서 왔어요.”(최 목사)
대화가 오가면서 긴장이 역력했던 김 목사의 얼굴은 한층 누그러졌다. 인터뷰를 시작하기에 앞서 전씨가 드론을 띄웠다. 지금의 교회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담기 위해서라고 한다. 촬영을 마친 전씨는 최 목사와 함께 본격적인 촬영 준비에 나섰다. 교회 본당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오후 3시 21분, 이날 또 다른 주인공인 천음전(68) 권사가 첫 번째로 촬영에 나섰다. 최 목사가 기도로 시작을 알렸다. “오늘 신앙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러 이 자리에 왔습니다. 천 권사님의 기록을 통해 다음세대가 본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기도가 끝나자 전씨가 녹화 버튼을 눌렀다. 기록이 시작됐다.
“안녕하세요. 저는 달산교회 천음전 권사입니다. 돌이켜보면 전 신앙 생활하기 참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시대상 한 집안에서 두 종교를 믿는다는 건 말이 안 됐습니다. 또 예수를 믿는다 하면 손가락질받기 십상이었고요. 다른 종교를 믿었던 시댁이 배려해주셔서 교회를 출석할 수 있었습니다.”
천 권사는 최 목사의 질문에 따라 자신의 삶 여정을 풀어갔다. 처음에는 달산교회에 출석하기 싫었단 고백부터 자식이 가출해서 잡으러 나섰던 이야기, 남편의 병상으로 고생했던 이야기까지…. 그런데도 천 권사는 돌아보니 감사한 일들이 가득했다고 고백했다. 어느덧 촬영을 마무리할 시간이 됐다.
최 목사의 권유에 따라 천 권사는 자식들을 향해 미소를 띄우고 유언을 남겼다. “은영아, 현영아, 성민아. 엄마야. 항상 기도하듯이 신앙생활 잘하고 선한 영향력 끼치길 바란다. 평안히 잘 살다가 천국에서 만나자. 울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엄마 천국으로 보내줘. 사랑해.” 한 시간 분량의 인터뷰가 끝난 자리에는 뭉근한 감동이 남는 듯했다.

오후 4시 12분. 김 목사의 촬영이 진행됐다. 김 목사는 달산교회에 부임한 지 약 1년이 채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담임 목회자로 교인들을 섬기고 싶다, 주님 말씀에 파묻혀 살고 싶다는 마음을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이곳 달산교회에 부임하게 됐다”며 “영덕군이 아무래도 문화와 동떨어진 지역이다 보니 우쿨렐레 교습과 같은 문화 사역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회 이야기는 물 흐르듯 마을 이야기로 이어졌다.
“교인들이 80세 넘으신 분들이 많으세요. 아흔이 넘으신 어르신도 계시고요. 그런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인생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제 미래도 생각해보게 돼요. 우리 마을이 한 20가구 조금 넘게 있는데요, 아침에 나오면 어르신들이 농사일하시거나, 추울 때는 따뜻한 차 한 잔 나누시죠. 서로 다 아니까 굳이 인사하지 않아도 ‘안녕하세요, 오늘도 잘 지내셨죠?’ 이렇게 가벼운 인사만 나눠도 마음이 따뜻해져요.”
사라져가는 교회…기록 남기기 위한 몸부림

다도움컴퍼니는 인생화원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기에 앞서 1년 반 동안 우여곡절을 겪었다. 소멸 고위험군 지역으로 장시간 동안 이동하는 건 물론, 어르신들이 인터뷰를 경험한 적이 없어 촬영하는 데 애를 먹곤 했다. 전씨는 “연로하신 분들은 애초에 잘 안 들리시거나 말씀을 잘 못 하시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거기에 토박이 사투리까지 더해지면 편집하면서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어르신들을 촬영하면서 그들이 다음세대를 향한 사랑과 신앙심을 접할 땐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어르신들의 일생을 담는 인생화원은 웰다잉 준비도 돕는다는 게 최 목사의 설명이다. 그는 “현대 사회에서 상조회사의 등장과 장례 문화의 변화로 교회는 점차 죽음과 장례에서의 역할과 주도권을 상실해가고 있다”면서 “하지만 인생화원은 교회가 다시 죽음과 부활의 신앙을 중심에 두며 장례 문화의 주도권을 회복하도록 돕는다. 특히 온라인 추모관과 영상 간증은 부활의 소망을 전하며, 다음 세대에게 복음을 전하는 중요한 통로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인생화원에 담긴 어르신들의 인터뷰는 부고장에 담겨 주변 사람들에게 전달하도록 설계됐다.
인생화원은 영덕을 시작으로 점차 소멸 고위험 지역군 방문을 확대할 예정이다. 최 목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도중에 사라진 교회도 종종 있었다”며 “농어촌교회의 신앙과 지역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담길 수 있도록 한국교회의 응원과 관심 부탁드린다”고 요청했다.
영덕=글·사진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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