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대구 중구 삼덕교회(강영롱 목사) 60주년 기념관 앞. 대구형무소라고 새겨진 문패 옆으로 쇠창살이 홀로 서 있다. 틈새 너머에 보이는 청년의 오른팔에는 한자로 수인번호 ‘二六四’(이육사)가 적혀 있었다. 다름 아닌 민족저항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이육사(이원록·1904∼1944)의 조형물이다.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이육사의 벽’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육사의 얼굴과 함께 옆에는 그가 펴낸 시 ‘황혼’이 나란히 놓여 있다. 벽 위에는 적힌 성경 히브리서 13장 3절이 눈길을 끈다.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라.’
일제강점기 당시 대구형무소 사형장 터에 세워진 삼덕교회는 순국한 애국지사들을 기념하기 위해 2021년 대구 중구청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역사 보존에 앞서고 있다. 삼덕교회와 중구청은 지난달 ‘대구형무소 역사관’을 개관했다.
이날 교회 목양실에서 만난 강영롱 목사는 “교회가 공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주민에게 다가갈 방법을 고민했는데, 감사하게도 중구청에서 먼저 대구형무소 역사관 조성을 제안했다”며 “이전부터 기념관을 계획했던 터라 당회는 당연히 수용하기로 했다. 주민뿐만 아니라 교인들도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육사의 벽을 뒤로한 채 2층 역사관에 들어서자 대형 스크린에는 애국지사 216명의 이름과 얼굴이 나타났다. 이육사,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의거를 주도한 장진홍(1895∼1930), 대한광복회 총사령관 박상진(1884∼1921), 민족저항시인 김영랑(1903~1950), 그리고 얼굴은 없지만 일부 정보만이 남겨진 이들까지…. 한참을 서 있어도 전부 읽을 수 없을 만큼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상은 방대했다.
1908년 7월 처음 대구감옥으로 개청한 대구형무소는 당시 한강 이남에서 가장 큰 교도소였다. 서울 서대문형무소, 평양형무소와 함께 일제강점기 전국 3대 형무소로 불렸다. 대구형무소에는 잠정 2386명의 서훈 독립운동가가 투옥됐는데, 이 중 216명(서훈 212명)이 순국했다. 서대문형무소(195명·국가 서훈 175명)보다 한참 높은 수치다.
김영선 골목문화해설사는 “대구형무소에는 영남 지방뿐만 아니라 전라도 호남, 제주, 충청도, 강원도 평안도 등 각지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이 수용됐기 때문”이라며 “1919년 3·1운동 당시에만 해도 5000여명이 수용됐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121.83㎡(약 37평) 규모 역사관에는 독립운동가들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박상진 장진홍 의사의 옥중 서신, 대구형무소의 당시 배치도, 건축에 쓰인 벽돌 등이 전시됐다. 애국지사들의 삶과 대구형무소의 주요 연혁, 주요 인물들의 이야기를 안내 패널과 수화기로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역사관 끝 무렵에는 ‘추모존’이 관람객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관람객은 직접 감사편지를 적을 수 있다. 화면에는 ‘감사합니다’ ‘대한 독립 만세’ 등의 문구와 함께 태극기가 걸려 있었다.
모두 관람하고 나오는 길목에는 헌화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다. ‘숭고한 정신 깊이 새기겠습니다’고 적힌 자석 위로 국화꽃 한 송이를 남겨본다.
대구=글·사진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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