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현대무용 강국이다. 20세기 전반 건국 과정에서 유럽에서 온 유대인의 정착으로 동유럽 민속무용과 독일 모던댄스의 영향을 받은 춤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국 현대무용의 대모’ 마사 그레이엄의 영향을 받아 1964년 창단된 바체바 무용단이 무용 붐을 일으켰다. 이후 1970년 키부츠 현대무용단, 1992년 베르티고 무용단, 1994년 인발 핀토 & 압샬롬 폴락 무용단, 2002년 카메아 무용단 등이 잇따라 창단돼 국제적으로 존재감을 발휘했다.
오하드 나하린(72)과 호페쉬 쉑터(49). 이스라엘 현대무용을 대표하는 두 스타 안무가의 작품이 나란히 무대에 올라간다. 국내 최초의 공공 컨템퍼러리 발레단인 서울시발레단은 나하린의 ‘데카당스’를 오는 14~23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한다. 그리고 성남아트센터는 올해 개관 20주년을 기념해 쉑터의 ‘꿈의 극장’을 14~15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선보인다.
나하린은 22세 때인 1974년 바체바 무용단에 입단한 직후 그레이엄으로부터 재능을 인정받았다. 미국 유학을 떠난 그는 무용수로 활동하는 한편 1979년 안무가로 데뷔했다. 이후 다양한 무용단에서 작품을 선보인 그는 1990년 바체바 무용단 예술감독으로 취임해 2018년 물러날 때까지 30개 이상의 작품을 창작했다. 예술감독을 그만둔 이후에도 상임안무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독특한 음악성과 과감한 신체 표현이 특징인 그의 작품은 전 세계 무용단에서 공연되고 있다. 또 나하린이 무용수들의 일상 훈련을 위해 개발한 움직임 언어 가가(Gaga)도 국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국내에서 나하린의 작품은 바체바무용단의 2002년 ‘데카당스’와 2007년 ‘쓰리’ 내한공연과 유니버설발레단의 2006년과 2019년 ‘마이너스 7’ 공연으로 관객과 만난 바 있다. 이번에 서울시발레단이 선보이는 ‘데카당스’는 나하린이 자신의 작품들을 발췌해 하나의 공연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그의 독창적인 안무와 예술 세계를 집약적으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파리오페라발레단 등 여러 무용단에서도 꾸준히 공연된다. 다만 무용단마다 ‘데카당스’의 작품 구성이 달라진다. 서울시발레단의 ‘데카당스’는 ‘마이너스 16’ ‘아나파자’ ‘베네주엘라’ 등 1993년부터 2023년까지 발표된 7편을 엮었다.
한편 쉑터는 바체바 무용단에서 4년 가까이 무용수로 활동하면서 퍼커션 등 음악도 전문적으로 배웠다. 2002년 영국으로 이주한 그는 이듬해 안무가로 데뷔해 주목받았다. 2008년 자신의 이름을 따 무용단을 만든 그는 발표작마다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현대무용계의 스타가 됐다. 음악을 직접 작곡하는 것은 물론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 다른 매체와의 적극적인 협업도 그의 특징이다. 2003년 직접 안무·작곡·연출한 영화 ‘폴리티컬 마더 : 더 파이널 컷’는 칸영화제 최우수 무용영화상을 받았다.
호페쉬 쉑터 컴퍼니는 국내에서 2010년 ‘폴리티컬 마더’, 2012년 ‘반란/당신들의 방에서’, 2014년 ‘선’(Sun), 2023년 ‘더블 머더’를 선보였다. 이번에 한국에서 2년 만에 선보이는 ‘꿈의 극장’은 성남아트센터가 유럽과 북미의 20여 개 극장 및 축제와 함께 공동제작한 작품이다. 지난해 파리올림픽 문화 올림피아드의 일환으로 파리시립극장에서 초연한 뒤 투어 중이다. 이 작품은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 욕망과 억압의 경계를 탐구하며 내면의 복잡한 감정을 춤과 음악으로 풀어냈다. 쉑터 특유의 역동적인 안무와 직접 작곡한 라이브 음악, 강렬한 조명이 어우러져 몰입감을 선사한다. 생동감 넘치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몽환적인 분위기와 현실의 날카로움을 동시에 표현하며 관객들에게 강렬한 경험을 안겨준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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